'얼굴값'

2006-05-19     김원민 논설위원

5·31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은 가운데 앞으로 4년간 지역살림을 맡겠다고 나선 ‘인물’들의 얼굴 알리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시내 곳곳의 대형 건물들에는 후보자의 얼굴을 새긴 대형 벽그림이 내걸려 있고, 후보자들이 내미는 명함에도 예의 그 ‘잘 생긴’ 얼굴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얼굴을 ‘파는’ 시절, 얼굴을 만천하에 내놓아 바겐세일 하는 형국이다. 그러니까 얼굴이야말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은 미술에서도 초상화라는 인물화를 통해 드러난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초상조각과 함께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으며 그것은 인물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람 됨됨이 보여주는 물증

그런데 초상화는 단순히 얼굴모습을 그린다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인격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만큼 선 하나, 표정 하나에 주인공의 삶의 족적이 그대로 담겨져 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 사람들, 특히 선비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를 볼라치면 그런 느낌이 더 앞으로 다가온다. 당시,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터럭 한 올이라도 실물과 닮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이라는 의미가 절대적이었기에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물을 정확히 묘사하면서도 인물의 정신과 성품까지 담아내야만 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를 ‘정신을 옮긴다’는 뜻에서 ‘전신(傳神)’이라 불렀던 것이다. 즉 ‘사형(寫瀅형태를 그리는 것)’을 넘어 ‘사심(寫心·마음을 그리는 것)’까지도 성취해야 했다.
예컨대, 우리 나라 초상화의 백미로 꼽히는 18세기 선비화가 윤두서의 자화상의 경우 대담하면서도 정교한 묘사, 강렬한 내면의 구현 등 형상 묘사와 정신세계의 표출은 가히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불타오르는 듯한 수염이나 정면을 노려보는 매서운 눈이 섬뜩할 정도다.
그런, 얼굴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말로도 많이 사용된다. 흔히 ‘남자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것은 얼굴이 한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또 얼굴에 관한 여러 속설들 중에도 ‘얼굴값을 한다’는 표현은 이번 5·31 지방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명제라 할 것이다. 물론 출마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거기에 더하여 ‘얼굴값’을 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초상화보다 더 정교한 사진기술에 힘입어 잘 생기고 반듯한 얼굴을 내걸고 그 얼굴을 세일하는 후보자들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없는 거짓 약속이나 남발하고 남을 헐뜯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표를 얻으려 한다면 그야말로 자기 얼굴마저 무책임하게 내팽개치는 일이며 얼굴값도 못하는 졸장부의 행태라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오늘날의 얼굴사진에도 인물의 정신과 성품까지 나타나 그 인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때 그 같은 행태는 자기 자신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동안도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고 옮겨 다니는 후보자나 선거 참모들의 추한 모습이 도민들에게 비쳐지면서 과연 그들이 얼굴값이나마 제대로 하고 있는 지 회의가 들 지경이다.

모든 것 초월하는 아름다움

따지고 보면 옛 선비들의 초상화에서는 아무 사심이 없고 후덕하고 맑으며 올곧고 자존심이 묻어나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난다.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의 면면(얼굴사진)도 조선시대 선비 못지 않게 하나같이 준수하고 잘 생긴 모습이다. 그들에게서 옛 선비와 같은 사심 없고 올곧은 자세를 바람은 지나친 것일까.
미술사학자였던 고 최순우 선생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의롭고 투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일지니……”라며 얼굴을 예찬했다.
그렇다. 얼굴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인즉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뛰어나면 “얼굴값을 한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얼굴값도 못 한다”는 비아냥을 듣기 마련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은 모두가 ‘얼굴값을 하는’ 일꾼이기를 기대한다. 자기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   원   민 (편집국장/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