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사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병폐는 서로 못미더워 하는 일이다.
국민과 정부의 관계도 그렇고 노사관계도 그렇다. 학생과 교사,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사이도 서로 믿고 의지하려는 기풍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한 나라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말한다.
신의가 믿음을 심는 일이라면 신뢰(Trust)는 그 결과로서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각자가 신의를 쌓아가는 가운데 상호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되며 그러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신뢰사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신의와 신뢰는 서로 표리의 관계에 있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신뢰란 서로 믿고 의지함인데,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자신 앞에 진실한데서 나온다.
신의는 거센 물살 가운데 버티고 있는 바위와 같이 일단 어떤 길에 들어서면 어떠한 난관이나 유혹이 와도 자신의 믿음과 원칙에 충실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눈앞에 놓인 이해관계에 흔들려 신뢰를 저버린다면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신의가 없으면 약속을 하고도 상황에 따라 이 말했다 저 말했다 하면서 밥 먹듯이 뒤집을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의가 없는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생각의 일관성, 가치판단의 일관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만약 상호간에 믿음이 없다면 모든 것을 일일이 우리 스스로 확인해야 하며 직접통제할 수밖에 없어 매사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이처럼 신뢰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안정시킨다는 점에서 우리사회를 지탱시켜주는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신뢰기반의 붕괴는 개인 스스로 위험관리의 필요성을 높이고, 위험관리는 적지 않은 사회적비용을 부담시킨다.
타인을 믿을 수 있음으로서 비로소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일에 열중할 수가 있고, 믿음으로 인해 남들을 의심하고 염려하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신의를 지킨다는 것은 약속한 것을 지킨다는 뜻이다.
신의가 없다면 약속을 지키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합의나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신의 없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 서로가 신의를 지킬 경우 약속도 지켜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리고 신의가 있어야만 진실을 말하고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실천할 수 없는 일을 미리 떠벌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 신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에게 진실해야 한다.
이처럼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것을 지켜가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 간에 신뢰를 쌓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행위가 필요하다.
진솔한 동기와 소신으로 행동하고, 진정으로 대의명분과 지역발전을 위하는 마음이 작동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신뢰가 쌓아지는 진정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믿고 신뢰를 보낼 것이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는 가운데 신뢰가 쌓여감으로써 비로소 우정도 공고해지는 것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할 경우 결국 서로 손해를 보면서 손해를 끼치는 불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치의 계절, 우리는 지금 지극히 당연한 윤리를 가지고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이 광 래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