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

2006-05-12     제주타임스

5월은 매력적인 계절이다.
산과 들이 온통 푸른 빛깥에 담뿍 젖을 무렵이면 우리는 신선한 생명과 소망이 혈관 속에 맥박치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회색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걸아가고 있다 할지라도5월의 맑은 하늘은 우리의 절망이나 권태로움을 희망과 환희로 변용시기는 힘을 갖는다. 그러기에 “5월은 계절의 여왕“(노천명)이라는 노래가 시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던 것이리라.
 5월은 우리에게 음산한 비밀이나 엄큼한 음모를 벗어던지도록 깨우치고 있다.
5월에는 창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모든 것이 밖으로 열려져야 하는 풍경은 그만큼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지나간 겨울이 몹시 추웠을지라도 그 때에 입었던 외투와 두툼한 겉옷을 훌훌 벗음으로써 우리의 참 모습이 외부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줍은 처녀의 어깨에 새겨진 흉터 자국도 감출 수 없으며, 밀실의 고독을 즐기던 외톨이도 햇볕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이렇게 푸른 5월이면 우리는 새로이 우리 가정을 돌아보게 된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여 각종 이벤트가  요란하게 벌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정에서는 사치스러운 고급 의상을 입고 활보할 필요가 없으며, 짙은 화장으로 자기도취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정은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인생의 커다란 목표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다가 마침내 집에 돌아와서 그것을 찾는다고 한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도 결국은 먼 이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있었다.
삭막한 이 세상에 가정처럼 정다운 곳이 없다.
그것은 화려한 대리석과 도금한 벽 안의 번쩍거리는 가구가 즐비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철창이 감옥을 만드는 게 아닌 것처럼 외제품으로 꾸민 호화로운 장식이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
한 핏줄을 나눈 가족끼리 무엇이든지 사랑의 이름으로 용서 되며, 기쁨이든 슬픔이든 함께 나누는 평화로움이 머무는 곳이 바로 우리 가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집에서 살도록 하기 위하여 세상은 그토록 넓다“(에머슨)고 서슴없이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가정에서 휴식과 위로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광활한 세상을 헤매야 할 것인가? 오늘의 극단적 이기주의로 불신과 질시가 만연하는 사회에 따스한 신뢰를 불어넣기 휘해 먼저 우리 가정에 지속적으로 사랑을 저축해 두어야 한다.  혼이 없는 신체가 사람이 아니듯이 사랑이 없는 울담이 가정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가정이 수행하고 있는 가장 신성한 기능은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생명의 지속이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생명이다. 이 연속의 시간에서 가정은 탄생의 진통을 쌓으면서 인류의 존속에 봉사한다. 이것은 자연의 작품이다. 이해 타산이나 생활의 기술이 개입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그래서 생명의 탄생은 신성한 것이다.
  오늘날 극도의 물신주의와 찰나주의에 휩쓸려 우리 가정에서 생명  경시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우리의 죄악이다. 우리의 가정은 푸른 5월처럼 생명력으로 충만해야 한다.
생명 경시의 풍조나 죽음의 문화를 치유하는 일은 희열을 동반하는 진통이다. 이러한 진통이 우리 가정에서 싹터야 할 것이다. 가정은 생명과 사랑을 저축해 두는 금고요, 사회 생활의 조화와 능력을 무한히 채굴해내는 금광인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