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같은 사람을 뽑자"

2006-05-05     김덕남 대기자

최선 없으면 차선이라도

그는 요즘 ‘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세상이 겸손해 지고 깍듯한 예의가 거리에 넘쳐난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얼굴은 살맛 나는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표정엔 짜증이 묻어 났고 입가엔 냉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의 말과 표정에 어깃장을 놓았는가.
그렇다. ‘5.31 선거바람’이 원인이다.
한번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알친구’ 만난 듯 반가워 못살겠다는 표정으로 양손을 부여잡고 흔들어대는가 하면 평소에는 목에 심줄을 세우고 뻣뻣하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스칠 때마다 90도 각도로 허리를 꺾어 조폭 수준의 예를 갖추는, 그런 유(類)의 역겨운 선거운동 행태가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선거는 민주주의를 가꾸는 농사일과 같다. 거기에서 각각의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투표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은 중요하다. 후보자가 마음에 들든 아니든 그렇다.
어차피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골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선거분위기가 역겹다고 선거를 피할 일은 아니다.

나라의 흥망은 백성의 책임

송(宋)나라대의 개혁정치가 왕안석(王安石?021~1086)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근본이 단단해야 나라가 평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고 했다.
청(淸)나라 말기 소설가 오연인(1866~1910)도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백성들의 책임(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 했다.
백성이 맥을 못 추던 봉건전제군주 시대에도 이렇게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고 나라의 흥망성쇠가 백성의 손에 달렸다는 논리를 폈다는 것은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국가가 지향하는 이른바 민주주의 이념을 한마디로 뭉뚱그려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경영에서의 백성의 힘과 책무를 강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선거에서의 한 표 행사도 백성의 힘이며 이 한 표 행사의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백성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선인들의 ‘피플 파워(people power)’ 담론은 오는 31일 지방선거에 임하는 제주도민들의 민주적 자각과 책무를 일깨우는 매우 긴요하고도 유효한 메시지다.
도민들이 선택하여 찍는 한 표 한 표가 제주도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할 것이어서 그렇다.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운명이 도민의 한 표 행사에 달린 것이다.

어차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면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모두가 훌륭한 분들이다.
“개도 닭도 다 나와서 설치고 있다”는 비비꼬인 비아냥거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보는 명함뒷면에 빼곡하게 나열된 20-30개를 넘나드는 학력이나 경력사항을 봐서는 그렇다.
자기만이 ‘능력 있는 일꾼이고 제주를 구할 인물’이라고 뽐내는 당당함은 부럽기까지 하다.
그만큼 제주에는 인재도 많고 인물이 많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자각 있는 도민들의 깨어있는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정말 제주를 위해 몸바쳐 일할 소신 있고 능력 있고 청렴하고 신의 있는 인물을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된장의 오덕(五德)’은 ‘5.31 선택’의 유용한 준거 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된장은 ‘다른 맛과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는 단심(丹心)’, ‘오랫동안 변치 않는 항심(恒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없애는 불심(佛心)’, ‘매운 맛을 달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화심(和心)’ 등 다섯 가지 특성을 가졌다고 한다. 이를 ‘된장의 오덕’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뚜렷한 철학과 소신(丹心), 일관성과 신의(恒心), 부정을 배격하는 청렴성과 전문성(佛心), 겸손과 희생정신(善心), 화해와 통합의 리더십(和心)’으로 풀이해서 오덕을 지닌 된장 같은 그런 구수한 일꾼을 가려낼 수 있다면, 그래서 도민적 ‘매니 페스토’로 활용하여 표로 연결할 수 있다면...”
그런 기대를 해본다. 지나친 욕심일까?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