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시비에 휘말린 변시지 화백
제주출신 원로화가 변시지씨의 그림이 위작(僞作)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진위를 놓고 논란이 돼왔던 이중섭과 박수근 그림 수십 점이 검찰 수사 결과 모두 가짜라는 판정이 나와 큰 충격을 준 바 있거니와, 이번에는 생존 화가의 그림이 가짜라는 것이니 그 위작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위작 소동은 지난달 25일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실시한 제101회 미술품 경매에서 변 화백의 10호짜리와 15호짜리 그림 두 점이 각각 1150만원, 2000만원에 낙찰되면서 벌어졌다.
작가에게 진위도 안 물어봐
경매 후 변 화백은 이 가운데 10호짜리 작품 ‘제주풍경’이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밝힌 것. 사실 그림에 조금만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보고 변 화백의 그림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다. 그 만큼 경매에 나왔던 그림이 매우 조잡하고 서툰 솜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변 화백도 지적하다시피, 제주 바람은 강하기 때문에 그림에서처럼 파도가 휘몰아 칠 때 바닷가의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는 데도 이 그림의 나무들은 모두 똑바로 서 있을 뿐 아니라, 수평선이나 새의 모양 역시 변 화백의 수법과는 다른, 아마추어적(的)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울옥션은 지난해에도 이중섭 그림 8점을 경매에 붙여 그 가운데 4점을 판매했으나 위작 시비에 휩싸여 왔는데, 이번의 위작 논란은 작가가 살아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생존 작가의 작품은 일단 작가 본인에게 진품여부를 물어보는 게 우선이며, 경매라고 해서 작품의 진위도 가리지 않은 채 높은 값에 낙찰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업체의 얄팍한 상업성과 안일한 사고방식은 질타를 면치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위대한 화가도 자기가 그린 그림을 놓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더라도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이야 전문가의 감정에 의해 진위를 가릴 수밖에 없지만 생존 화가의 작품은 당연히 그림을 그린 당사자에게 확인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다.
예컨대 우리 나라 현대 동양화의 대가의 한 사람으로 치는 천경자의 ‘미인도’는 작가의 기억력과 전문가의 감정(鑑定)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품으로 감정하고 매입해 소장하고 있는 데, 정작 천경자 화백 본인은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 논쟁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 있다.
또 어떤 원로화가는 자신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믿을 수 없어 화상(畵商)이나 소장자의 감정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최고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정교하게 모사(模寫)된 위작을 진품으로 잘못 판정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미술품 감정은 ‘진실 규명’이 아니라 ‘추정’일 뿐이라고도 말한다.
'진실규명' 아닌 '추정'일 뿐?
그러나 이 같은 사례들은 특수한 경우에 속하지 이번 변 화백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미술에서의 위작의 역사는 미술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오래 되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정말 ‘진짜 같은 가짜’(위작)는 시장질서를 무너뜨리고 진짜까지 도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미술사에 큰 손실을 초래한다.
오죽했으면 시중에 추사 김정희의 글씨 7∼8할이 가짜요, 이중섭 그림은 8할, 박수근은 4할이 가짜라는 말이 나돌까. 뿐만이 아니다.
삼국시대의 토기로부터 불상, 고려자기, 조선시대의 서화와 각종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가짜 유물과 위작이 모든 분야를 침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 위작 시비의 불똥(?)이 제주 작가에게까지 튀고 있다. 역(逆)으로 해석하면 그 만큼 변 화백의 그림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한편 반가운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위작이 범죄행위인 것만은 틀림없고 그 ‘짝퉁’으로 인해 작가의 작품성이 훼손되고 명예가 실추될 것은 뻔한 노릇이니 웃을 수만도 없다. 게다가 가짜를 거액을 주고 사들인 구매자들의 피해는 또 어떤가.
조금만 유명한 화가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위작. 작품을 돈으로만 보는 세태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계기로 미술시장의 사기 행위와 유통 난맥을 바로 잡을 묘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김 원 민 (편집국장/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