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名 좋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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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밥 장난’이라는 게 있었다. 1940년대까지 농촌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되던 ‘놀이’ 중의 하나였다. 조국 광복 전 후 어린이 놀이터도, 놀이 기구도, 장난감도 없었던 가난한 시대의 산물(産物)이었다.
놀이는 간단하다. 남-여 어린이끼리 솥 대용의 소라 껍질 두 개와, 쌀 대용의 흙 가루 약간, 국거리와 반찬 대용의 풀닢 몇 개, 그리고 밥상 대용의 토란 잎만 있으면 된다. 물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오줌을 갈겨 넣으면 OK다.
우선 흙밥 놀이를 하자면 아방(아버지)-어멍(어머니)이 필요하다. 남자 어린이가 먼저 “내가 사내니 아방하마, 여자인 네가 어멍하라” 고 한마디로 결정을 한다.
소라껍질 두개에 흙 가루와 풀잎과 오줌을 넣어 밥과 국을 만들고, 반찬도 어찌어찌 장만한다,
아방은 밥먹는 시늉, 어멍은 설거지하는 시늉을 하며 재미 있게 논다.
그러다가 어멍이 설거지에 진저리가 났는지 아방에게 말한다. “이번엔 내가 아방 할 테니 너가 어멍해라” 그래서 여자 아방- 남자 어멍이 된다.
또 잠시 더 놀다가 다시 아방-어멍이 바뀌어 처음대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말 한마디에 하루에도 몇 번씩 아방-어멍이란 명칭이 뒤바뀌는 게 ‘흙밥 장난’이다.
2
요 근년 들어 제주도내에서는 ‘어린이 흙밥 장난’ 같은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어 많은 도민들의 혀를 차게 하고 있다. 도로 이름-축제 이름-오름 이름들을 다반사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남-북을 잇는 동-서 관광도로의 명칭만 해도 그렇다. 이 도로들은 첫 개설 당시 동부산업도로, 서부산업도로란 이름이 붙여졌었다. 그런데 이 도로들은 왕복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포장하게 된 것을 계기로 2002년 3월 이후 동부관광도로, 서부관광도로로 이름이 고쳐졌다.
그런데 그 후 4년만에 다시 이들 도로 이름을 바꾸겠다니 모두 3번째가 된다. 아마 ‘개명(改名)을 즐겨하는 시람들’이 여럿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그 이유를 그럴 듯하게 잘도 찾아냈다. 동부관광도로는 제주시~표선~서귀포로 이어졌으니 공동 번영의 뜻이 담겨 있어 ‘번영로’요, 서부관광도로는 제주시~중문관광단지 평화센터와 평화연구소로 이어졌으니 ‘평화로’로 바꾼다는 소식이다. 마치 동화 속의 아름다운 꿈의 도로 이름 같다.
아무리 도로 이름이라 해도 역사성이나 유서(由緖)-유래, 그리고 그 어떤 동기나 계기를 무시한 채 현업인들의 필요에 따라 그 때 그 때 개명해버리는 것은 시류(時流)에 대한 아부 근성이다. 어느 때는 산업상 필요하다고 ‘산업도로’요, 또 어느 때는 관광상 필요하니 관광도로다.
또 그 4년만엔 무지개 빛 번영로-평화로라니 꼭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다.
3
탐라문화제도 예외가 아니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문화제는 근년까지 ‘한라문화제’였다가 역시 이름 고치기를 좋아한 사람들에 의해 탐라문화제로 개명해버렸다.
한라문화제 창설 당시에도 이름을 짓기 위해 가능한 명칭을 모두 동원해 심의에 올렸었다. ‘한라’-’탐라’는 물론, ‘백록’-’영주’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 ‘한라’를 택해 ‘한라문화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무슨 연유에선지 40년이 흐르자 창설 당시 사람들이 채택한 첫 이름을 버려두고 그 때 버린 이름을 새로 채택했으니 희한 한 일이다.
들불 축제장의 오름 명칭은 어떤가. 한문으로는 샛별 오름이란 뜻의 신성악(晨星岳)으로 큼지막하게 써 놓고, 한글로는 새별 오름(新星岳)으로 개명해버렸다.
이 모두가 “나는 아방, 너는 어멍”하며 수시로 명칭을 바꿔버리는 ‘어린이 흙밥 장난’과 무엇이 다른가.
김 경 호 (상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