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물론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경우
이런 가정을 해 본다. 김우중 씨가 제주 출신이 아니었다면 대우그릅에서 쫓겨났을까. 물론 ‘쫓겨났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피땀 흘려 만든 기업을 타의에 의해 손을 떼야 했으니, 쫓겨났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떠나, 세계가 인정하는 경영인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퇴장이었다. 그의 해외 도피(사실상 권력에 의한 추방)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비단 제주도민만이 아니었다.
어떻든 그는 자랑스런 제주인이다. 경제논리라기 보다 정치논리에 의해 희생된 제주인이다.
사실 IMF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은 것은 대우만이 아니다. 많은 기업이 자금난에 허덕였다. 정부는 대우의 유동성 위기를 그룹 해체의 명분으로 삼았다. 사실상 대우가 ‘국민의 정부’에 의한 재벌 개혁의 표적이 됐던 셈이다.
만약 하이닉스처럼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등으로 도와줬다면, 김우중 씨는 무참히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만들어 자금을 빼돌린 것 등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김 씨 말대로 해외지사 설립을 위한 자금으로 정부도 묵인했던 것이라면, 그가 그토록 공들여 만든 국내 5대 그룹의 하나인 굴지의 그룹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큰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결국 김우중 씨는 출신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영곂3꼭犬?서울겙黎?등 세(勢)가 큰 지역 출신이었다면 정치권이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결집된 지역세는 정치적인 힘
지역세는 곧 정치적 배경이다. 정권 역시 국회의원 수가 많은 지역부터 눈치를 본다. 제주는 국회의원이 3~4명 뿐이다. 아무리 이들이 힘을 쓴다해도 다른 지방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만약 김우중 씨가 순수한 영남, 또는 호남 출신이었다면 정부도 지역 민심을 거스리지 않기 위해 그를 무 자르듯 단칼에 자르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권 역시 정권의 그러한 행위를 용납했을리 만무하다. 그게 현실이다.
혹시 김우중 씨는 스스로 자신이 제주 출신임을 한탄하진 않았을까. 당시 항간에 떠돈 대통령 출마설이라든가, 내가 최고라는 자만과 오만이 권력층에는 눈엣 가시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당시 괘씸죄까지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 정도였으므로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김우중 씨처럼 제주의 큰 인물이 세력에 밀려 어처구니없이 몰락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당시 제주 출신 정치인들은 김우중 씨 구명 노력을 했을까. 했다면 얼마나 했을까. 원하든 원치않든, 밉든 곱든, 범죄야 어떻든, 도민들도 그를 구해 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
아마도 영곂3?출신이 같은 지경에 놓였다면 국회, 지역 주민 모두 “그러면 안된다”고 청와대로 몰려 갔을 것이다. 약한 지역세 대문에 팽(烹) 당하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선 안된다. 그것은 김우중 씨 한 사람이면 족하다.
기업가ㆍ정치인 많이 배출해야
이제는 김우중 씨 같은 인물들을 키워내야 한다. 경제인이든, 정치인이든, 학자든 전국, 아니 세계적인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제주지역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것도 따지고 보면 성공한 제주 출신 기업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김우중 씨 같은 기업가들이 많이 배출돼야 취업의 문도 넓어질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을 배출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역시 관심을 끄는 제주 출신 정치인이라면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원희룡 국회의원이다. 강금실은 자랑스런 제주의 딸이다. 그녀 자신이 제주의 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
남자들도 어려운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서울시장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시장 당선, 낙선에 관계없이 강금실은 앞으로 제주가 키워야 할 인물이다. 선거에 나선 그녀를 돕자고 하는 말은 공직선거법상 곤란하다. 다만, 선거가 끝난 뒤에라도 제주가 아끼고 키워야 할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원희룡 역시 촉망받는 제주의 아들이다. 실력으로만 치자면 국회내에서도 수재로 꼽히는 인물이다. 다만, 그 역시 제주 출신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다.
흔히 제주도 사람들은 배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배타적인 것은 오히려 다른 지방이 더 강하다. 제주도 사람들이 배타적이라면 예부터 왜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았겠는가.
세(勢)가 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뜻을 순순히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혹시 제주의 인물을 키우자는 주장에 대해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덧붙이는 말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