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양병윤 화백이 그리는 만화 ‘황우럭’이 오늘로 8,000회를 기록하고 있다. 800회가 아니라 8,000회이니 그 집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우럭’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 전의 1968년 5월부터 일간지 제주신문에 연재가 시작됐다. 그 무렵은 중앙 일간지에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안의섭의 ‘두꺼비’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 같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선명한 만화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이제 안의섭 화백은 타계하고, 정운경은 은퇴하고,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국방일보)과 양병윤의 ’황우럭(제주타임스)‘만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필자가 낙하산을 타고 제주신문사로 내려간 것이 1969년 11월이었으니까 양 화백은 나보다 1년 남짓 언론계 선배인 셈이다.
우리 만화의 주인공 ‘황우럭’은 제주의 어부들 뿐 아니라 제주도민 누구에게나 친숙한 생선이다. 선명한 황색 몸뚱이에 대가리와 아가미는 크고, 눈은 뽈록 튀어났는데, 한 구멍에 떼지어 살기 때문에 심지어 ‘우럭 고망’이라는 숙어가 나올 정도이다. 갈치와 고등어와 달리 비늘이 있고 맛이 담백한 이 고기는 제사상에도 오르는데, 유독 고집 센 사람 기질처럼 가시가 센 것이 특징이다. 양 화백은 왜 하필 제목이 ‘황우럭’이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 센 가시를 들먹였다. 생선 팔천 마리를 그리는 것도 벅찰 판에 하물며 그때마다 개성 있는 인물을 그림에랴. 그뿐 아니라 그는 제주신문과 제민일보를 거쳐 최근에는 제주타임스 카툰까지 매일 만화와 만평까지 그리고 있으니 그가 요즘 지쳐있는 모습이 과로 때문임을 알겠다.
만화와 만평을 연재하는 동안 ‘황우럭’이 걸어온 역정은 그대로 우리의 현대사라 할만하다. 70년대 유신시절에는 검열을 받노라 일화가 많았으며, 80년대는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 군사문화에 대한 은근한 항거로 세월을 보냈다. 90년대 문민정부 시대에는 또 그 나름의 정치적 파행이 되풀이되지 않았던가. 2000년대, 음울한 아이엠에프 시대에 ‘황우럭’은 비참한 심경의 서민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웃었다. 2002년부터 우리나라는 월드컵 축구 4강의 쾌거를 올리더니 2006년 엊그제는 WBC 야구에서도 4강을 획득했다. ‘황우럭’은 이런 온 국민의 감격과 기쁨도 그 굵직한 선으로 그려냈다.
이런 양 화백에게 그 동안 도는 제주도문화상 언론부문 본상을 시상하고, 2002년 7,000회를 드렸을 때는 뜻을 같이 하는 도민 300여 명이 모여 ‘황우럭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해 주기도 했다. 이제 그가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그 동안 그린 만화들을 집대성하여 전집을 만드는 작업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도민들이 거들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만화 ‘황우럭’ 8,000회를 충심으로 축하하며 거듭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오 성 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