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마육(乾馬肉)을 세공으로 바치는 것을 금지

2006-03-01     제주타임스

가교마(駕轎馬)
 가교마는 임금이 타는 가마를 메는 말로서 체고(키), 모색, 나이, 외모 등이  각별히 우수하여야 하는데 제주마는 열등하여 호마(달단마)를 수입하여 가교마로 사용하였다.  영조 14년(1738)에 사복시첨정(司僕侍僉正) 김태연(金泰衍)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제주마의 씨수마(種牡馬)가 전보다 작아져서 가교마(駕轎馬)까지도 중국산 말을 섞어 쓰니,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23년에는 신하에게 제주마를 가교마로 활용할 수 있는 그 대책을 강구한 바 있었다.

태마(?馬), 만마(輓馬), 복마(卜馬)
 제주공마 중 흉노마, 노태마 등이 이에 충당되어 등에 짐을 실고 수레를 끄는 마, 짐을 운반하는 말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숙종28년(1702)제주공마봉진 내역에 보면 흉구마(凶咎馬, 흉변이 있을 때 사역하는 말) 32필, 노태마(駑?馬, 짐 싣는 말) 33필 등이 있다. 이들 말들은 중국 사신이 왕래 시 물자수송과 장비운반, 군량수송 등에도 활용되었다.

역마(役馬)
 조선시대농업에 이용되어 흔히 농마라고도 불리며 밭갈이, 마차 끌기, 타마와 복마처럼 일에 활용되었던 말이다.

종마(種馬)
 세종7년(1425)에 제주에서 생산된 몸집 큰 암말50필과 수마 6필을 홍주원산도에 방목, 번식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제주마는 전라도 섬지방과 강화도를 비롯하여 전국에 배정되어 한국마(韓馬)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말고기(馬肉)
 제주풍속에는 매년 섣달에 암말을 잡아서 말려 건 마육(乾馬肉)을 만들어조정에 진상하였으나 고려요승 신돈과 조선조 연산군은 백마 육(白馬肉)이 양기를 돕는 것이라 하여 즐겨 먹었다고 한다. 태조4년(1395)과 태종1년 5월 2일에  제주에서 건 마육을 세공으로 바치는 것을 금하였다(命濟州勿進乾馬肉). 그리고 세종 7년에는 금 도살도금을 설치하여 말고기를 먹는 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반면 말고기 매매를 합법화하였다. 그러나 말고기 수요가 증가하여 밀도살이 성행하므로 세종 16년에 고득종(高得宗)의 권유에 따라 말 도살 및 말고기를 먹는 자 650명을 강제로 평안도로 이주시킨 바도 있다. 그래도 민간에서의 말고기 먹는 풍습은 계속되었다. 세종실록에 세종17년(1435) 3월12일자 제주인이 지방풍속에 자기의 우마(牛馬)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먹었던 자(殺自己牛馬 祭而食肉者)라는 기록이 있다. 현종9년에도 형조와 한성부가 새로 정한 금제조(禁制條)에 소와 말을 도살하는 일(牛馬屠殺) 등 모두 8조목이었는데, 한성부는 특히 소와 말고기를 금지하는 일(牛馬肉禁)을 중한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말고기를 먹는 원인은 식량이 부족하여 조선후기까지 말을 도살하여 고기를 먹어 그 단속은 쉽지 않았다.

말가죽과 힘줄
 말가죽은 가죽신, 주머니, 아교 등을 만들었으며, 특히 가죽신은 문무관료에게 분배되고 궁대(활집)는 군사용, 사냥용등에 보급되었다. 그리고 장고(북)를 만들기도 하였다. 말안장과 말힘줄은 매년 군기사에 상납되었으므로 격년으로 교자궁을 만들어 보내도록 하여 제주목에 70장, 대정현에 10장, 정의현에 10장을 정하여 바쳐진 바도 있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예법이 잘 지켜져서 경국대전예전의 의장 규정에 따라 의복을 입고 갓을 써야 교양과 인격을 표중하는 것이 되어 서민들도 갓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남성은 관모로, 여성은 머리장식과 머리모양으로 신분을 구별했다고 한다. 방목하는 말에 있어서 갈기털과 꼬리털을 도둑을 맞는 사례가 많아 성종21년(1490)에 말갈기 옷을  금하라고 명하였다.

탕건(宕巾)은 벼슬이 있는 양반이 갓 아래 받쳐 쓰던 관의 하나로 말총을 잘게 세워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만들었다. 집안에서 갓을 벗고 탕건만을 쓰다가 외출시에 탕건 위에 갓을 썼다. 중국에서 비단을 재료로 했던 것과는 달리 보통 말총을 재료로 탕건골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보관할 때는 탕건집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망건(網巾)은 상투를 튼 사람이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에 두르는 그물같이 생긴 것을 말한다. 보통 말총, 머리카락 등으로 만들었다. 만들 때는 망건골을 이용하고 보관할 때는 망건집을 이용했다.
 말꼬리로 체를 만드는 사람을 말미사장(馬尾篩匠)이라고 한다. 일본에 마미(馬尾)라는 성씨가 있는 것도 여기에서 기원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동물의 척수의 끝부분을 마미(馬尾)라고 한다.    

((43) 제주마의 활용(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