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김평진 이사장의 학원 인수
아라에 '새둥지' 틀고 새로운 도약발판 마련
1966년 8월 김평진 이사장이 제주여자학원을 인수하여 1972년 6월 아라동 현 부지로 학교를 옮기게 된다.
호은 김홍빈 선생의 유언에 의하여 설립된 제주여자학원은 초대 이사장 김인현 선생에 이어 1964년에 김승전, 1965년에 김인경 이사장이 취임한 이래 8형제 사이에 학교 경영에 대한 이견과 불화가 심각해지면서 학원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학원이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 것은 제일동포 실업가인 김평진 제주관광호텔 사장이, 제주에 살고 있는 형 김평식 사장의 주선으로 1966년 7월 전격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8월 15일 성대하게 취임식을 가짐으로써 제주여자학원의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게 된다.
김평진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약속대로 학교시설을 현대화하여 타교에 손색이 없는 선구적 위치로 올려놓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우선 기존의 학교 부지를 매각하여 새로운 부지를 매입하고 시설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현재 학교부지 아라동 2360번지 일대 토지 10,250평을 매입한 후 이도동 부지를 대물로 주는 조건으로 ‘동방공영’과 학교건물 신축계약을 체결하고, 1971년 7월 12일 기공식을 가진지 일년이 채 되기 전인 1972년 6월 24일 완공되어 새 학교로 이전하게 되었다.
학교 인수자 김평진 이사장은 1926년 4월 2일생인 제주시 회천동 출신으로 1940년 15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실업가로써 제주여자학원 인수뿐만 아니라 제주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제주개발기금과 밀감묘목 기증을 비롯해 제주도농민을 일본으로 초청 선진기술을 습득케 하고, 관광호텔을 개관하여 제주도 관광객유치에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전국소년체전을 위한 운동장 건설비용지원과 올림픽 지원금 모금 등 모국과 고향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을 기울여 온 분이다.
김평진 이사장이 취임 후에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면모를 일신하기 시작했다. 오현고 다음으로 45인 조의 교악대 발대식을 가졌고, 1973년에는 체육관의 준공을 보게 되었는데, 도내 학교 체육관의 효시이다. 1982년 24학급인가로 학교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교실난을 겪다가 1984년 별관 9개 교실을 완공했고, 1986년에는 동백관을 준공하여 양호실, 음악실, 예절실, 도서실 등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1년에는 별관 4층을 증축, 어학실습실과 전산교육실을 구비함으로써 부족함이 없는 최신교육시설을 갖춘 학교의 면모를 과시하게 되었다.
또한 사학의 독자적인 교육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1982년 11월 23일 ‘경애, 개척, 봉사’로 건학의념을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 제주여자고등학교 제2의 도약
1995년 11월 3일 제주여자학원 제16대 이사장으로 김화남 현 이사장이 취임하게 된다. 취임배경에는 김평진 전 이사장이 연로한 점도 있었으나, 21세기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젊은 이사장에게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학교를 활기차고 미래지향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김화남 이사장이 취임 후 1996년에는 본관 양쪽 날개 부분을 3층으로 증축하여 제2도서실과 다목적실을, 1999년에는 현대식 급식소 「평화관」의 준공을 함으로써 교육 시설환경에 있어 전통의 명문 사학다운 규모를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운영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의 교원정년단축제도에 대한 발 빠른 대처와 학교운영위원회를 활성화하여 수요자 중심의 세계적인 교육추세에 맞춰나갔다. 학교운영회를 통해 학교정책결정의 민주성, 합리성, 효과성을 확보하고 학교교육 목표달성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1996년부터 이루어진 종합생활기록부 전산화 작업은 타 학교에 앞서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을 통하여 교사들이 겪는 관련 업무량을 크게 줄이는데 공헌하였다. 또한 1998년도에 학교 홈페이지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다가 1999년 3월 2일부터 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학습정보, 진로정보, 열린 학습코너, 대학진학 자료코너, 외에 다양한 학교소식을 올리고 있다.
제주여자고등학교 김영철 교장선생은 학생들로 하여금 배움에 충실함은 물론 긍정적인 사고를 겸비하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여, 이 사회의 꼭 필요한 인재양성을 교육의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여자고등학교는 2006년 2월 제54회 졸업생을 포함 13,970명의 졸업생을 배출함으로써 명실 공히 제주여성의 품격을 높인 본산이라 할 수 있다.
○ 제주여고의 자랑이었던 예술제
제주여자고등학교의 예술제의 뿌리는 1947년 2월 10,11일 양일간에 걸쳐 개최된 제주고등여학교 개교 1주년 기념음악회라 할 수 있다. 1955년 이전까지의 예술제는 주로 교내 행사로 개최되었으나 1956년 1월 31일자로 재단법인 제주여자학원 인가가 공식화되면서 1956년 개교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주여자학원 10주년 기념 예술제’를 성대하게 개최하게 되었다.
공연은 합창 등 음악과 연극, 무용 등 3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특히 연극에는 대작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오델로’와 함께 ‘봄의 송갗를 공연하였다. 이 공연은 3일간의 주야 6회 공연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연장 공연하라는 요청에 못이겨 하루를 더 연장하기까지 하였다. 공연 외에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품, 수예품 등 580여점에 이르는 작품들을 모아 관덕정에서 일주일 동안 미술 및 수예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1956년부터 종합예술제로 승격된 제주여자고등학교의 예술제는 제주극장이나 중앙극장 등을 빌려 3일간의 일정으로 주야로 나누어 6회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주여자고등학교의 자랑으로 예술제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학생과 교사가 일심동체가 되어 열정과 노력의 집합체를 이루어 낸 결과였다. 이러한 예술제에 대해 언론에서도 관심이 많았고, 중고 예술제에 대한 평가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실리기도 했었다.
오늘날처럼 대중문화 매체가 다양하지 못해 볼거리가 귀했던 당시에 제주여자고등학교의 예술제는 단순한 학교의 잔치를 떠나 제주시민들의 잔치였을 뿐 아니라 제주도민을 위한 잔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연기일을 연장하는 경우도 생겼고, 제주도 일주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1958년 제12회 예술제에서 공연한 ‘백설공주’는 제주도적십자사의 후원 및 요청으로 4박5일간 도 일주 공연을 한 바 있다.
매년 전통으로 화려하게 개최되던 예술제는 1967년 제17회 예술제를 끝으로 그 맥이 점점 약화되어 또다시 교내 행사로 자리 잡고 말게 된다.
강 선 종 (기획실장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