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람

2006-02-17     제주타임스

이해관계나 의견의 대립으로 분쟁이 생겼을 때,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역설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서 나온 주장을 내세울 때에도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무슨 단체니 연합이니 하는 집단의 사람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역설의 노예임을 씁쓸히 절감한다.
그리고 그 높은 목소리에서는 “국민의 뜻”이라는 구절이 민요의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참으로 국민의 뜻은 주먹을 휘두르며 외치는 저주와 욕설 속에 들어있는 것일까?
대다수 침묵하는 국민들이 공허한 마음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과시나 자만, 이기적 독단에서 큰 사람이 탄생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위대한 사람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여 일을 열심히 실천한다.”(채근담)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서, 자칫 그가 열심히 실천해 온 수련의 과정을 망각하기 쉽다.
그는 혼신의 힘과 열의를 모아 생명을 불사르며 땀을 흘리는 위대한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이처럼 성취를 향한 강한 충동은 물고기 연어에서도 볼 수 있다.
자기 삶이 시작된 장소에서 알을 낳고 죽기 위하여 연어는 바다로부터 힘을 다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성취의 충동으로 어떠한 고난이나 절망도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위인이다. “푸석돌에 불난다”(한국속담)는 말처럼 힘든 과정을 반복하여 실천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커다란 업적을 이룬 위인들 가운데는 대중에게 호령을 하며 자신을 내세운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소박한 생활인으로서 우리가 바라는 위인은 자진하여 박수갈채를 보내게 되는 사람이 아닐까? 그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묵묵히 실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위대하다.
“군자는 태연해도 교만하지 않는다”(공자)는 교훈이 아니라도, 타인에 군림하는 영웅 심리를 배격할 줄 안다.
무한 경쟁이 현대 사회의 한 특징이다.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싸움터에 우리는 놓여 있다. 지위든 권세든 보다 높은 위치, 큰 자리를 탐내며 흘러가는 물결의 소용돌이에서 자신의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자기 과장이나 교만, 남을 멸시하는 고성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에 베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교만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님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인간은 고귀한 존재라고 믿는 한, 교만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생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고귀하게 태어났으므로 참된 경지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의 등을 두드리면서 참된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으나, 악어 새끼의 등을 두드리면서 참된 악어가 되라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살지만 인간의 삶은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우리는 낮은 곳,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귀하게 태어난 인간의 상태는 사소한 일을 통해서 잘 드러날 것이다.
나를 위해 애쓰는 친구에게 따스한 손길로 악수를 청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겸손이라는 일상 생활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교만이 지옥을 세운다면 겸손은 천국문을 연다.
우리는 때때로 겸손을 무력하거나 비굴한 자의 무례로 곡해하는 착각에 빠질 수가 있다.
낮은 곳에서 성취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신약성경)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