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행방불명인 재심 청구…“아버지 돌아가신 날짜 몰라 생일에 제사”

2020-11-23     임아라 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도 몰라서 생일에 제사를 치렀다. 내 소원은 모든 분들의 누명을 벗어주시고 명예회복만을 바란다” 4·3사건 행방불명인 재심 청구 소송 청구인 김용자 할머니는 법정에서 간곡히 호소했다. 

23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201호 법정에서 4·3사건 행방불명인 김덕윤, 김명환씨 등 40명에 대한 재심 청구 소송 심문 절차가 진행됐다. 

이날 재심청구인 고 김덕윤씨의 딸 김용자 할머니(82)를 비롯한 행불인 유족 김명춘(83) 할아버지 등이 재판장에 증인으로 나섰다. 

증언에 나선 김 할머니는 “가족들이 다 자고 있던 새벽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총·칼을 내놓으라며 온 집안을 뒤지고 아버지를 데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어 “화북지서에서 온 사람들이 ‘이 분의 아버지는 죄가 없고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 같다’며, ‘그 분을 데리고 오면 풀어주겠다’고 해서. 어머니와 친척분을 찾아갔으나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후 “대전형무소에서 잘 있으니 동생을 잘 돌보고, 어머니 말씀을 잘 들으라는 내용의 편지가 왔고, 나중에 진주 형무소에서 ‘얼마 안 있어서 풀려날테니 집안에 있는 본인의 물건을 잘 보관하고 있으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소식이 끊겼다”고 증언했다. 

그 이후 행방을 묻는 심문에 “한 어르신에게 ‘대전형무소부터 함께 투옥한 사람에게 들었다’며 ‘아버지께서 바다에서 총살을 당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고인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 생일에 제사를 지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어머니 기일에 맞춰 제사를 치르고 있다.

한편 재판은 4·3 당시 국방경비법 등 위반 혐의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재심 청구로 피고인이 300여명에 달해 순차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지법은 심문 절차와 진상보고서, 수형인 명부 등을 통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