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과 희망

2005-12-01     제주타임스

실망을 주는 일들

황해도에서 월남한 그는 우리 나이로 일흔일곱이다. 경찰에서 정년퇴직한 분인데 퇴직 후 동네 테니스클럽에서 운동을 즐겨 하게 되었고 테니스클럽 회장을 지내기도 해서 동내에서 차(車)회장으로 통한다. 나도 편이상 차회장이라 부르기로 한다. 차회장은 지난 7월17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열린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저지’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회자의 역할을 맡았다. 집회를 주최한 황해도민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차회장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한 언론인이 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은 불가사의가 하나 있어요. 경찰이 ‘적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우리를 힘으로 막 몰아붙이는 것이어요. 경찰서장이나 정보과장이 내가 다 아는 후배들인데 ‘제발 우리 처지를 좀 이해해주세요’라고 해요. 언제부터 적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목청을 높이고 ‘맥아더는 대한민국의 은인’이라고 얘기하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가 된 건가요?” 

다음 것은 2005년 전교조(全敎組) 서울지부 통일 위원회 사업계획안에 있는 글이라고 어느 기자가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북이 3대 혁명과 선군(先軍)정치 노선을 통하여 추구하는 가치는 한마디로 반제(反帝) 자주의 가치, 사회주의 옹호 발전이라는 가치, 조국통일의 가치일 것이다. 이러한 이북의 가치 지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북의 물리력· 사상력은 전쟁 당사자인 미제(美帝)의 강력한 물리력에 맞서 전쟁억지력 구축을 통한 정전상태 속의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 기자는 그 수업자료 중 상당수는 객관적인 근거 대신 교사· 학생의 수기를 인용해 감정을 부추기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며 부끄럽고 충격적인 문장들도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은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를 낙담케 한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슬프게 한다.   이런 일들을 보노라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희망을 주는 일들

북한 인권 국제대회 공동 대회장 안병직 교수는 “안 교수님은 어떻게 해서 과거의 사회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까?” 라는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이라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죠. 대학 4학년 때 인생문제를 고민하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얘기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이 살고 있는 천국을 추구하지 말고 네 이웃을 사랑하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이웃, 내 동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생각이 잘못 된 것을 깨달았을 때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 교수였고 정년퇴임 후  일본 후쿠이 현립 대학의 특임교수로 있다.
그는 1970년대 말 한국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고 1970 년대에 수차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고초를 치르기도 한 ‘진보’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한 후 자유민주주의 운동과 북한인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김 진홍 목사도 있다. 그는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002년 후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열린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운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유신헌법 철폐운동에 가담했다가 긴급초치 1호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15년형을 선고 받고 13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던 그는 지금 자유 민주주의운동의 기수로  선봉에 서 있다.

이 밑에 많은 그룹들이 연대하여 자유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에서 전향한 신지호교수, 전형적인 주사파 경력을 가진 홍진표씨 김영환씨 등 실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다.
자기가 지켜온 사상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을 깨달은 사람들의 이와 같은 훌륭한 활동이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해 가게 될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허   계   구
상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