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의 민주화
프랑스 소설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저서<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에 미국의 인류학자 피셔는 1999년 그의 저서<제1의 성>을 통해 “여성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고 보부아르의 유명한 명제를 뒤집었다. 제2의 성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1의 성은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를 뿐이며 양성(兩性)의 민주화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어떻든 모든 생의 세계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서로간의 성적조화로 살아가도록 하느님의 주신 축복된 섭리이라는 말에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직도 남성보다 여성의 더 터부시되고 있다. 근래에 와서 성이 많이 개방 되고 남성의 세계로만 여겨 왔던 사회 곳곳에는 “금녀(禁女)”의 벽은 무너졌고 “여풍(女風)”은 이제 당당하게 호적법을 개정해서 호주 제도를 폐지시키고 상속법을 개정해서 여성도 상속지분을 확보 하였을 뿐 아니라 여성도 종중회원이 될 수 있다는 권리를 대법원의 판결로 확보 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나 법에 비해 여성은 성의 문화에는 거의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미흡 한 것처럼 보인다. 성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미덕이라고 믿고 있는 여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성에 대하여 잘못 발설 했다가는 바람난 불륜의 여자로 취급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이것은 유교문화로 자라온 부모들의 영향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건전하고 만족한 성관계는 부부사이는 물론이고 개인의 정신 건강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혼하는 부부도 말로는 성격차이라고 하지만 밑바닥엔 성적불만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성적으로 만족한 부부라면 웬만한 문제가 있어도 그 결혼은 유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의 임상연구 결과이다. 성적인 불만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만성적인 욕구 불만으로 축적되어 이것이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괜히 신경질이 나고, 몸도 아프고, 성격상 변화도 올 수가 있다는 전문가의 말이다. 급기야는 이혼의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성의 양성화(陽性化),민주화는 필요한 것이다. 적절한 성 반응과 체질은 남편으로써, 아내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이요, 책임이다. 물론 바쁘고 생존경쟁시대의 과로가 남편의 정력감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섹스에 대하여 터부시 되고 야만적이라는 생각을 바뀌어야 한다. 남성의 정력감퇴, 여성의 불감증은 거의가 정신적인 것이라고 최근 서구의 “섹스치료소”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의 건전하고 만족한 성생활은 안정되고 건강한 사회조성에 기여 하는 것이다. 또한 노인들의 성관계도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많다고 한다. 노인의 복지는 성을 중요한 관심분야로 서구에서는 떠오르고 있다. 어느 노인 전문가는 “노인들을 위한 이성 교류의 장을 대대적으로 마련 한다면, 건강보험의 의료비 부담이 대폭 절약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맞는 얘기 같다.
노인들의 성을 음성적으로 다루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방석아줌마” “박카스 아줌마” 등 음지의 성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 제주시 신산공원에 아침운동 갔다가 70대의 상처한 노 선배에게 들은 얘기다. “대도시 공원 등지에서 손만 잡으면 천원, 만리장성을 쌓으러 가면 삼 만원 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고 한다. 노인들의 성생활의 건강에 좋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의 된 우리나라 굴지의 대그룹 회장의 젊은 탤런트들과 뿌린 사랑의 로맨스는 국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노인 85%이상이 “밥 먹고 살기 어려운” 빈곤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노인의 성”을 논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의 양성화(陽性化)와 민주화는 밝은 사회가 되고 사회적인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