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제주도 목마장의 변천(6) 어승마ㆍ연려진상마ㆍ체임마 등은 별목장에서 사육

진상 흑우(黑牛)는 천미장ㆍ황태장ㆍ가파도 별둔장에서 사육

2005-11-23     제주타임스

제주도에는 10소장과 산마장 이외에 목사나 현감이 교체되어 갈 때 국왕에게 바치는 어승마·진상마·체임마를 각 소장과 산마장에서 선발하여 사육하고 순치 시키는 별둔장(別屯場)이라는 특별목장이 3·6·10소장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흑우를 길러 국가에 바치는 우목장(牛牧場)이 있었다.

(1) 제주목의 3·6소장내 청마별둔장에는 어승마, 진상마를 위해 말 31필, 정의현의 10소장내 청마별둔장에는 말 54필이 사육되었다.

(2) 도서지방인 우도장(牛島場)에도 말 200여 필을 사육되었다.
우도에 처음으로 말이 방목 된 것은 숙종 24년(1698)이지만 감시인은 1년에 한두 번 돌보러 왔을 뿐 언제나 살고 있지는 않았다.
1702년(숙종 28년) 7월 13일 순력은 일출을 구경한 목사 일행은 우도로 가서 목장(牧場)안에 있는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다.
이날 점검한 말의 수는 262필이며, 이들 말을 관리하는 목자(牧子)와 보인(保人)의 수가 23명이다.
우도의 모습은 동두(東頭)로 표시된 쇠머리오름을 머리로 하여, 알오름이 혹으로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포구와 어룡굴이 나와 있는데, 어룡굴은 어룡(魚龍)이 사는 곳으로 어선이 접근하면 태풍과 뇌우(雷雨)가 일어나 나무를 쓰러뜨리고 곡식을 해친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당시 우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민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원조(李源祚) 목사가 장계(狀啓)를 올려 우도목장의 개간을 허락 받은 1843년경부터이다.
현재 마 10여필, 소 52마리가 방목중이고 말을 이용한 관광역마차가 우도봉주위에서 관광객을 실고 여러 곳을 관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도는 제주의 유명 관광명소 중의 한 곳이다.

(3)고마장(雇馬場)=제주시 사라봉, 건입동, 일도2동의 들판에 위치하여 사객(使客)과 관원(官員)들이 이용할 말을 기른 작은 목장과 마사(馬舍)로 여기에는 민간인을 고용하여 운영하였고 이를 고마장(古馬場)이라고도 부르며 육지(陸地)로 나갈 말들을 방목했던 목장이었다.
현재 사라봉 동쪽과 별도봉에는 목장의 돌담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제주항과 사라봉 공원, 제주시 농협하나로마트 동쪽과 교육대학 일대이다.

(4)모동장(毛洞場)=고려 때에는 말을 기르기 위하여 다루가치로 하여금 관리·감독하게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우장(牛場)으로 변했고 다시 우마(牛馬)합장으로 변했다.
700여 두의 소와 말을 함께 방목하여 관리되어 오다가 자연 폐사 등으로 점차 그 수가 줄어들므로 1800년대 말 7소장으로 이장했다고 전해진다.
현 대정읍 무릉리를 중심으로 신도리(녹산봉)에 목지동산라고 부르는 곳과 축일당(던드리堂), 고산리, 영락리까지이다.
그리고 치림장(雉林場)은 모동장에 속한 목장으로 진상할 말을 방목했던 곳으로 이곳은 마치 숲속의 꿩집과 같은 모양의 목장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5)서산장(西山場)=숙종 32년(1706) 목사 송정규의 건의에 의하여 설치한 것으로 2소장의 공마할 말(馬)들과 관덕정에서 선발된 공마(貢馬)를 배에 실을 때까지 방목한 목장이다.
현재 조천읍 함덕리 해수욕장 동쪽에 있는 서우봉으로 마늘, 보리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목장의 돌담흔적과 장통밭이 있다.

(6)좌가장(左哥場)=구좌읍 한동리에 있던 명의(名醫)인 좌자이(左自以)가 왕후의 종기를 치료해주고 받은 목장으로 전해진다.
이 목장은 地·玄·宇·宙 出字場으로 운영했는데 숙종 35년(1709)의 탐라지도에 左哥馬場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바로 아래(북쪽) 포구가 左哥馬浦로 표기되어있어 1소장 말중에서 헌마할 말을 임시 방목했던 목장으로 생각된다.
제주삼읍현도에는 馬場과 左哥馬浦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도 이곳을 좌가장 터라고 부르며 당근과 마늘을 재배하고 있다.

(7)양달장(楊達場)=숙종 28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정의현 산마장에 설치하여 각 목장에서 흉구마, 노태마, 잡색마 등을 착출하여 진상에 대비했던 목장이다(남원읍 의귀리 말진밭에서 진상마를 사육했다고 한다.  현재 감귤수출단지).

(8)천미장(川尾場:下牧場)=정조대 제주읍지에 우감2명, 군두·목자20명이 소440두를 관리하였다.
그리고 조정에 진상할 말을 임시로 먹이던 목장인데, 이 목장은 성산읍 신천리 바닷가에 있다. 고종 때 이 마을 오장헌의 효행과 덕행으로 이 목장을 두 번이나 하사하여도 받지 않았으므로 마을공동목장이 되었으나 지금은 개인목장으로 한약재인 밀감껍질을 자연 건조시키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9) 황태장(黃泰場)은 1소장과 2소장의 경계인 체오름과 북오름 사이에 조성되어 貢牛했던 소목장이다.
흑우를 길러 나라에 진상하였으므로 흑우둔이라고도 부른다. 조선후기 관리조직은 우감2명 반직감2명(군목),군두·목자16~40명이 배치되어 소530~620여 두를 관리 하였다.

(10)가파도별둔장(加波島別屯場)은 영조27년(1751)목사 정언유 건의에 의해 흑우장을 설치하여 소 50首를 방목하기 시작하여 정조대에는 목감은 모슬포조방장이 겸임하여 찰색사 1명, 군두1명, 목자8명이 배치되었다.
1840년(헌종6) 영국선박의 침범과 왜구들이 빈번하게 침입하므로 이곳 흑우를 모동장(毛洞場)으로 옮기고 목장지대는 경작하여 농작물을 재배하였다.
현재 고구마, 보리, 마늘 등을 재배하고 있다.
(다음호는 일제 강점기의 마을공동목장 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