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위기, 제주만의 문제 아니다
지구상 6천여 언어 세계화 물결 속
90~95% 21세기 중에 소멸 전망
사용영역 위축 제주어도 그중 하나
국어기본법 지역어 살리기 걸림돌
제주어, 한국어와 동등하게 소중
국가 차원의 보존정책 뒷받침 절실
“우크라이나에는 6명만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4명만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그들이 죽으면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언어들/ 지금 몇 명만 아는 시가 있다/ 혼자만 아는 시가 있다”
이종섶 시인(1964 ~ )의 ‘무명시인’이라는 시다. 시인은 사라져가는 언어를 사용하는 극소수의 사람을 무명시인이라고 지칭한다. 그럴 만도 하다. 언어를 조탁하고 갈무리하면서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던가.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읽히지 않는 시를 그들만의 언어로 부단하게 낭송하고 쓰고 있지만 천대받는 무명시인들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방점은 사라져가는 언어에 찍히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신은 이 세상에 수많은 갈래의 언어를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바벨탑을 쌓고 감히,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꺾어버리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지구상에는 6천여 갈래의 언어가 있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이 중 90∼95%가 21세기 중에 소멸될 것으로 내다본다.
왜일까? 국어나 공용어의 사용이 제도화되면서 소수언어를 쓰는 영역이 갈수록 좁아지고, 도시화나 획일화가 전통문화와의 연계를 희박하게 하고 있는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더욱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영어 등 주요한 몇몇 언어의 지배 구도가 점점 굳어지고 있는데, 이는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인터넷에서 이들 언어가 주로 쓰이면서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언어 중 약 5천4백종(90%)이 인터넷에서 전혀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그 언어 자체와 그 언어로 표현돼 있는 뛰어난 인류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을 기회조차 없다는 뜻이다.
그 중에 제주어가 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의 단계별 다섯 가지 분류기준에 의하면 4단계에 속한다.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라는 것이다. 제주의 75세 이상 인구 중에 제주어를 구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5000명에서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이미 제주에서는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2007년)를 제정한바 있다. 이에 근거하여 최근 ‘제3차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도 마련하였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에 대해 후한 점수를 매기긴 어렵다. 예전에도 비슷한 공약사업들을 내세웠지만 추진과정에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주어 회생사업은 제주 차원의 문제만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어기본법이 지역어를 살리는 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국어정책은 원활한 의사소통 때문에 표준어로 한국어를 통일하고 있기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좇다보면 제주어 사용자는 졸지에 ‘교양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래서 지역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전하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국립지역어연구원의 설립을 통해 한국어 발전과 문화 창조의 토대인 지역어를 소중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고 가까스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지역어의 생존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어 보전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정부와 국회 입법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거칠게나마 살펴보자. 프랑스는 지역어 교육을 승인하는 법, 교육과정에 지역어를 포함시키는 법, 프랑스어와 대등한 지위를 지역어에 부여하는 훈령이 있다.
미국에도 인디언어 보존을 위한 법이 있다. 중국 역시 소수민족의 언어문자 사용, 방언사용 등에 대해 규정한 '국가통용언어문자법과 '민족지역자치법' 등이 있다.
2013년 10월 30일 제주를 찾은 미국 하와이대 윌리엄 오그래디 교수가 “제주어가 한국어의 방언이 아니라 자매어”라고 설파했듯 제주어가 한국어의 하위개념이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법정계획인 ‘제3차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이 덜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역어 보존정책이 뒷받침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제주어가 사망했다는 부고가 들려오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