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돌담 하나를 내려놓으며…

2018-10-28     오영훈 국회의원(제주시 을)

4·3 당시 불법군사재판 재심 결정
국가권력에 유린된 인권 바로 세우기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새로운 원칙도

국가에 의한 집단학살 소멸시효 없어
도민들의 희생 대한민국 이루는 초석
이제 수형인 ‘70년 고통의 짐’ 덜어줘야

 

‘4·3’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살기 위한 도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고, 유족들은 긴 세월 동안 재갈을 물린 채 연좌제의 대물림에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다.

제주 4·3으로 희생된 도민들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폭력의 희생자이자 역사의 증인이다. 항구적인 평화가 시작되고 있는 지금, 역사의 증인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시작도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 서있다.

지난 9월 3일, 제주지방법원이 70년 전의 불법군사재판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오늘날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만큼 국가권력 남용이 낳은 인권유린의 행위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19년 전 정부 기록보관소에 있었던 ‘제주 4·3 수형인 명부’에 이름 석자만 적혀있던 수형인들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하는, 그리고 조금은 늦었지만 당연한 결과다.

물론, 안타깝게도 수형인 중에는 형무소에서 억울한 삶을 살다, 고문 후유증으로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 수형인들에게는 음지에만 머물러 있었던 역사의 상처를 양지로 옮기는 첫 시작이고, 그동안 묻어 놓으셨던 고통과 눈물을 조금은 덜어드리는 일이 될 것 같다.

시작은 어려웠고, 더뎠다. 재심 청구의 구성요건이 되는 범죄 사실 기록, 재판 진행기록, 법원판결기록 등의 자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실’이라고 주장했던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기에, 이토록 오래 걸렸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촛불을 통해 찾아왔다. 국민들이 함께 세운 촛불의 힘이 사상 최초의 재심, 재판 기록이 없는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새로운 원칙도 만들어냈다.

또한, 2017년 12월 19일,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에 대한 성찰, 매끄럽지 못했던 도민의 상처 복구 과정을 해결하기 위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의 주요골자는 첫째, ‘제주 4·3사건’의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권리를 명시하는 것. 둘째,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 셋째, 4·3 당시 이뤄진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및 명문화. 넷째, 제주 4·3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치 및 운영을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이 법의 이면에는 국가 폭력을 이행했던 자들이 속죄할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도 담겨있다.

그렇기에 법안 심사 과정에서 “과거사 사건의 상대적 중요성이라든지 사건 간의 형평도 좀 검토되어야 한다”는 등의 억지와 발목잡기로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국가에 의한 집단학살은 소멸시효가 없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

고립된 섬 제주의 인구 30만 명 중 3만 명의 목숨이 스러졌던 그때, 우리 도민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귀한 분들의 헌신을 기억한다면 제주지방법원은 재심 결정 이후 과거 스스로 무너뜨린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단기간의 재심 과정을 통해, 생존 수형인들 어깨에 놓여있는 ‘70년의 고통’이란 짐을 하루속히 덜어드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여는 첫 과정임을 명심해야한다.

“이제랑 여기에 오십서/맘 놓고 이 자리에 어서 오십서/죽지 못해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자들끼리 옷깃 여미고/ 차마 살 수 없어/ 흙바람에 쓰러져 후여후여/ 길 떠난 님은 바람으로나마/ 잠시 머물다 가십서/ ...이제야 여기에 봄이 오고 이수다.(김수열 ‘한 아름 들꽃으로 살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