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돌하르방 ②

2005-11-08     제주타임스

이야기를 서울로 옮겨본다「청계천」.
나는 30여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청계천의 변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청계천은 복개된 도로에 상인들의 모진 풍파 속에 청계고가도로의 소음 등으로 푸른 시내(淸溪)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청계천 책방을 찾는 기쁨이 있었다. 청계천 도로변에 즐비한 ‘헌책방’들은 각자 상호가 있었다.
그것들은 헌책이 아니라 일반서점이 책들과 같으면서도 저렴하니 학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귀한 고서적들이 많았다.

청계천은 서울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흐르는 연장 3670m의 하천이다. 조선왕조가 1392년에 이곳 한양(서울)에 정도(定都) 당시는 자연하천 그대로 였다. 26대 고종때까지 500여년 동안 치수·개천사업과 준설공사가 이어졌다.
1958년 6월에 복개공사에 착수, 2년만에 하천 위에 간선도로가 만들어졌고 이후에 마장동까지 총 3520m가 복제되었다.
1967년부터 76년까지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이런저런 공사로 인해 청계천은 커다란 하수관으로 전락해 버렸으니 오랜 세월동안 청계천에서 물을 볼 수가 없었다.
필자의 노트에서 2002년 7월 20일 메모된「청계천 복원」계획을 찾았다.

청계천 복원이야 말로 “생명에 햇빛을 찾아주는 작업”이며, ‘맑은 물이 흐르는’ 글자그대로의 청계천(淸溪)! 이라 했다.
또한 유적들을 찾아 서울의 역사성을 회복한다는 소명의식도 담겨 있었다. 이리하여 청계천 복원공사는 복개도로와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2년 3개월만에 완료되어 지난 10월 1일 미래를 향한 푸른 물이 다시 열렸으니 오늘도 역사와 문화의 푸른 물길을 따라 30만명이 청계천변을 거닐고 있다. 벌써 500만명이 이곳을 찾았다는 서울시 관계관의 설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든 강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청계천만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광장에서 청계천 물이 시발하여 동쪽 방향인 종로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 물은 왕십리밖 살곶이 다리 근처에까지 흘러가다 중랑천과 합쳐 그때서야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지고 있다.
2005년 10월 23일, 명소로 떠오른 이 청계천에 제주 상징물인 돌하르방과 물허벅 여인상이 설치되었다. 제 14회 서울 제주도민의 날 행사에 앞서 상오 9시 청계천 황학교 주변 산책로를 잇는 세월교 입구 양쪽에 돌하르방(2기)가 물허벅상의 제막식을 가졌다.
신설동 전철역에서 10여분 거리다. 이날 서울시 관계인사들, 도민의 날 행사에 참석키 위해 상경한 제주도 인사들, 그리고 서울제주도민회 임원과 회원 등 300여명이 함께 돌하르방과 물허벅상의 서울 입성을 축하했다.

제주의 상징물을 새 명소 청계천 중심지에 설치한 것은 제주 출신 도민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는 공간으로 만남의 장소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제 제주섬의 수호신 돌하르방과 척박한 땅을 일구며 근면함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제주물허벅 여인상이 수도서울의 중심 청계천에서 오가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면서 국제관광휴양지로 급부상하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연상케하여 국내외 수 많은 사람들이 제주 방문길에 오르기를 소원해 본다.
올 가을엔 가족들과 함께 청계천을 산책하면서 내 향토 정의현(대정골)에 세워진 돌하르방을 만나는 기쁜 마음으로 돌하르방과 함께 사진을 남겨야겠다.
오늘도 청계천에는 가을빛이 쏟아져 내린다.

허   영   준 (서울도민회 자문위원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