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解憂所)
화장실, 1880년대~일제강점기 유입
말 자체는 고운데 냄새나는 곳 연상
시신 ‘화장(火葬)’하는 장소로도 들려
‘근심 푸는 곳’ 해우소, 격조 있는 표현
시설 향상 명칭마저 바꾼다면 금상첨화
몸 안 찌꺼기에 걱정거리까지 비웠으면
해우소(解憂所)란 말이 참 좋다. 풀 해(解)자, 근심 우(憂)자, 즉 ‘근심을 푸는 곳’이다. 화장실(化粧室)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감사원장을 지낸 바 있는 한승헌 변호사가 제주 방문기를 쓰면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데가 바로 해우소”라고 하였다.
제주도 하면 우선 ‘한라산’과 ‘짙푸른 바다’부터 떠오르는 것이 순서일 텐데, 웬 뜬금없는 소린가 싶어 자세히 읽어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제주시내 목석원(木石苑-지금은 없지만)을 찾았다가 한자로 된 ‘解憂所’라는 안내판을 보고, 묘한 호기심이 발동하더라는 얘기다.
유신정권 당시 인권운동가로도 유명했던 한 변호사는 이 글에서, 화장실이라는 용어가 서양식이라면 ‘해우소’는 지극히 동양적인 심오함과 격조를 살린 표현이라며 사뭇 감탄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정으로 인해 생리작용을 장시간 발산하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가 그곳에서 마침내 해결했을 때야말로 진짜 근심을 푼, 시원한 해우가 아니고 무엇인가”고 흥분해 한다.
30여 년 전에 쓴, 남의 글을 이렇게 길게 인용하는 이유가 있다. 생활하기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초조하고 불안함을 시원하게 처리할 수 있는 해우소처럼, 화장실이라는 용어 하나만이라도 바꾸면서 살아갔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온 우리말 사전(고려대학교 출판부)’에 의하면 1880년대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들어온 단어로 되어있다.
아마도 일본에서는 영어의 토일렛 룸(toilet room)을 화장실로 번역하였고, 이후에 우리나라로 유입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일본식 발음으로 ‘도이레’라고 불러 버리기도 한다. 실제 영어권에서도 토일렛 보다는 레스트 룸(rest room-휴식처)이라는 말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화장실의 원래 우리말은 ‘뒷간’ ‘측간’이었다. 아직은 변소(便所)라는 말도 쓰고 있지만, 이 역시 일어 ‘밴조’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종전의 재래식 변소가 목욕간과 세면장이 딸린 수세식으로 변하면서 WC(워터 클로짓-water closet)라는 표현도 한 때 유행했었다.
이 경우, 세면장에서 얼굴화장도 한다는 의미에서 화장실(化粧室)이라는 용어가 적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화장실이라는 낱말이 과히 올바른 표현은 아닌 듯싶다. 화장(化粧)이라는 말은 본시 얼굴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고운 말인데 하필이면 냄새나는 곳을 연상케 하느냐는 점이 영 개운치가 않다.
더욱이 시신을 화장(火葬)하는 말로 자칫 잘못 들릴 때도 있어, 기분이 거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차제에 화장실을 해우소라는 말로 대체하면 좋지 않을까.
최근 들어 우리나라 화장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로 평이 나있다.
깨끗하고 사용하기 편리할 뿐만 아니라 화려한 외벽은 물론, 내부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꽃과 멋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거실처럼 아늑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여기에 명칭마저 근심을 풀어준다는 해우소로 바꾼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지 않겠는가.
해우소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고찰(古刹)에서 사용해 온 용어이다. ‘경봉’이라는 법명을 가진 고승은 해우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배에 쓸데없는 것이 많으면 속이 더부룩해. 마찬가지로 마음이 언짢으면 몸에 좋지 않아요. 그것들을 뒷간에 다 버리고 오라는 뜻이지.”
해우소에 앉아있는 동안, 몸 안의 찌꺼기만이 아니라 걱정거리까지 모두 비워버릴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상쾌한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