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
173억원 사업 졸속 논의
제주문화예술재단 어떻게 ‘괴물’이 되고 있나
<2> ‘재밋섬 매입 가결’ 이사회 회의록 보니
제주문화예술재단이 173억 원이 소요되는 ‘재밋섬’ 건물 매입(리모델링 포함)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의 역할이 유명무실했다는 지적이다.
본 지가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회의 ‘재밋섬 매입’ 안건 심의 비공개 회의록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사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단체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이사장의 임기가 끝나면 사업비 확보가 어려워질 것을 염려하며 서둘러 추진할 것을 강조하는데 그쳤다.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5월 17일 제2차 임시이사회에는 재적이사 15명 중 10명이 참석했다. 이날 안건 가운데에는 ‘기본재산(제주문화예술재단 육성기금)을 활용한 건물 매입의 건’이 가장 먼저 다뤄졌다.
박경훈 당시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이 개회선언을 하고 조선희 경영기획본부장이 매입 건을 설명했다. 박 전 이사장은 “조례를 만들 당시에는 기금의 이자를 경상비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2020년까지)300억 원 목표 달성이 어렵고 은행 이자가 작다”며 기금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도내 문화예술단체 회장인 A이사는 “공간이 많이 생기는 것은 예술인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며 예총과 민예총의 무상 임대가 문제없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몇 년 전 재단 명의의 사무실에 예총과 민예총이 무상으로 입주한 데 대해 문제가 됐던 사안이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조치해달라는 뜻이다.
B이사는 “매입과 매각은 시기가 있다”며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C이사는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도 “기왕이면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고 시기를 강조했다.
당연직 이사인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은 앞서 열린 주민설명회 분위기를 묻는 다른 이사의 질문에 “모 단체를 제외하고는 찬성하는 분위기였다”며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어 박 전 이사장은 현재 삼도동 두 도의원 후보가 모두 ‘아트플랫폼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지방비 확보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첨언했다.
이 때 D이사가 “도청 국장과 박경훈 이사장 임기가 끝나면 리모델링 비용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신속하게 TF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E이사도 “빨리 추진하자”고 재촉했다.
이 같은 논의를 끝으로 ‘재밋섬 매입’ 안건은 원안 가결됐다. 이날 회의록에서 건물 매입에 대한 예산 대비 효용이나, 원도심 주차 문제에 따른 이용 불편, 도민 소통 문제를 고민하는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사회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한 달 뒤 이어진 2차 서면의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19일 재단은 이사들에게 재밋섬 건물 매입을 위한 특별회계 세입세출예산안 안건을 발송했다.
이사진이 받아든 세출예산서에는 재단이 건물을 매입하는 입장임에도 건물 양도세 1억 원, (TF 회의수당과 별도로) 워킹그룹 3명 250만원씩 12개월 지급, 주민 프로그램 운영비 5000만원, 인건비 1억8000만원, 여비 2000만 원 등 건물 매입과 실시설계용역을 위해 편성한 예산으로 보기 의아한 항목들이 다수 들어가 있었지만 이사 전원이 찬성에 기명날인한 문서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