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이사회 투명성
제주문화예술재단 어떻게 ‘괴물’이 되고 있나
<1> 비밀스러운 조직 운용
재단 “이사들 요구 따라 올해 회의록 공개하지 않기로”
운영 조례는 허술, 정관도 비공개…도민과 소통 창구 없어
이사회가 심의하고 지사가 승인하면 무엇이든 가능체제
한 해 고작 몇 억 원의 사업비를 예술인들에게 지원해주던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올해의 경우 140억 원을 집행하는 거대한 문화 공공기관으로 팽창했다. 사업이 커질수록 운영 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적·도덕적 책무는 더 강하게 요구되는데,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편집자주>
제주문화예술재단이 건물 매입에만 103억 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면서, 도지사 보고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일방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재단이 무슨 연유에선지 올해는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해 140억 원의 문화예술사업비를 집행하는 공공기관의 이 같은 비밀스러운 조직 운용에 우려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2001년, 제주지역에 문화예술재단이 창립했다. 경기, 강원에 이어 도세가 약한 제주에 문예재단이 설립되자 많은 도민들이 지역 문화예술 기반 확장에 큰 기대를 가졌다. 그 후 17년. 재단은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문화예술 ‘터줏대감’들을 이사장으로 거치며 연간 140억 원의 문화예술지원사업을 수행하는 거대한 기관으로 성장했다.
2018년 주요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재단은 올해 △예술창작 △생활문화 등 9개 부문에 138억2700만원을 지출한다. 이는 제주도가 수행해야 할 문화지원사무 중 일부를 재단이 공기관 대행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의 직원은 71명, 연간 인건비는 2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사업 규모가 커진 재단이 사업 추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
재단은 올해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재단 홈페이지(행정정보-이사회운영)에는 이사회 회의 결과만 간단하게 기재돼 있다.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는 다른 지자체 재단은 물론, 제주재단의 예년과도 다른 조치다. 이사회가 회의록 비공개를 결정한 상반기 심의 안건 가운데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육성기금을 활용한 건물 매입의 건이 포함돼 있다. 제주재단 관계자는 “공개하는 것이 맞지만 올해는 이사들의 의견이 있어 비공개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운영 조례에 따라 이사회 심의와 제주도지사 승인을 거쳐 사업을 추진한다. 타 지역 재단과 달리 운영 조례에 의회 보고가 명문화돼 있지 않아 도지사의 승인을 제외하고는 이사회가 사실상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 때문에 이사회 회의록은 이사진이 도민과 각 계를 대표해 어떤 발언을 하는 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소통 창구가 되지만 이사들 스스로 이 채널을 막아 버렸다.
앞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은 173억 원(리모델링비 포함) 건물 매입을 추진하면서 한 차례의 의견 수렴회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내부 관계자들과의 소통만을 거쳤다. 운영 조례는 (의회 보고 조항이 없어)허술했고, 이사회는 회의록 비공개를 결정하면서 ‘173억 사업’의 효용과 타당성은 제주도와 재단 이사회 그들만의 ‘합의’로 확정, 추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