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교육과정 도입, 충분한 공론화 거쳐야”
IB프로그램·제주형자율학교 추구가치 달라
보편평등·수월성교육 동반 학교현장 혼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지난해부터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 도입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교육청은 이에 ‘IB교육과정 및 평가제도의 제주교육 적용 방안 연구에 관한 위탁연구’ 용역을 지난 4월 마무리했다.
IB교육과정은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이 개발·운영하는 토론·논술형 교육과정이다. 프랑스의 대입자격고사인 바칼로레아가 철학적 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히는 논술 시험이라면, IB는 수업 방식과 평가, 기록이 일체화된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감은 용역이 끝날 때 즈음 ‘IB교육프로그램’을 제주형 자율학교에 시범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교육가족들은 혼란스럽다. 당초 도교육청의 IB프로그램 도입 취지는 이렇다. 내신 절대평가, 과정중심평가, 고교학점제 등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으며, IB 프로그램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여 수업의 변화와 질 관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학교의 학생평가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필자는 일련의 추진 과정들이 이석문교육감의 독단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지난 4월 30일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교직원 대상 설명회 때에 학교 교직원들은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추진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이 교육감은 지금이라도 이러한 불만들을 해소시키고 소통의 공론화를 거치면서 IB교육과정을 제주교육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제주교육가족들과 논의해야 한다.
IB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IBO(국제학위협회)가 요구하는 학교시설은 제주의 공립학교 교육환경과 매우 다를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제주의 공립학교와 제주영어교육도시 국제학교의 학교시설환경에 대해 교원수와 학생수 비율 차이가 확연하게 다르다. 도교육청 공립학교와 국제학교의 교원수 대비 학생수 비율은 14명 대 7명으로 2배 차이다. 더군다나 국제학교의 기타 지원인력까지 포함하여 비교해보면 비율의 차이가 14명 대 4.3명까지 떨어진다.
이 교육감은 IB교육과정 평가체제를 제주교육에 도입하여 제주형 자율학교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IB프로그램은 제주형 자율학교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제도로 IB프로그램을 제주교육에 도입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제주형 자율학교와 IB프로그램은 서로 대립되기 때문이다. 즉, 제주형 자율학교는 보편적 평등교육을 추구하지만, IB프로그램은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많은 교육비용을 투자하는 수월성 교육을 추구한다. 두 제도를 하나로 추진하게 되면 학교현장에 엄청난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이 교육감은 제주교육발전을 위해 제주형 자율학교를 통해서 교육의 평등을 추구하려는 것인지, IB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도교육청은 국제수준의 제주형 교육과정 개발·운영을 위해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켜왔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90명의 교사들을 아일랜드, 캐나다, 영국, 호주, 미국, 핀란드에 연수를 보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파견된 학교들 중에는 IB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단 1개교도 없다. IB프로그램 도입계획은 즉흥적인 정책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하필 6·13지방선거에서부터 불쑥 공약으로 들이 내밀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교육감은 IB프로그램 도입에 앞서 교육환경, 교원 전문성 신장 등 이러한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다. 더 걱정되는 점은 지난 4년 동안 제주형 자율학교를 운영하며 성공한 성과에 대해 아무런 자료도 제시 않고, 또 다시 제주아이들을 대상으로 IB프로그램을 적용하려는 실험을 하려고 한다. 정말 걱정스럽다. IB교육과정은 수월성 교육으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나 결코 제주형 자율학교 프로그램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를 무시하면서 IB교육과정을 제주형 자율학교에 접목하려는 발상 자체가 제주교육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