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와 '원샷'
얼마 전 어느 국책 은행원의 아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습관적으로 “폭탄주”를 강요하는 상사로부터 남편을 보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 대학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선배의 키스는 후배의 ‘원샷’(선배는 컵에 입만 대고 후배는 잔을 비워야 한다.)”이 유행인 모양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면 온 세상이 돈짝(조그마한 동전)만하게 보인다고 한다. 이 말은 술을 마시면 이성은 멀어지고 모든 것이 감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도 커지고 대담해지며, 자신의 마음에 있는 오욕을 부끄럽지 않게 드러내는 것이리라.
우리 주변에는 술로 인하여 생기는 불상사가 너무도 많다. 특히 자가운전이 일상화된 요즘에는 술로 인하여 가정과 가족모두가 몰락하는 것을 가끔 본다.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 중앙부처의 최고수장이 간부진들에게 회식시에 폭탄주를 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신문에서 보았다. 오랜 연륜의 고위 공직자까지도 “폭탄주”라는 것 때문에 평생을 걸어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사례를 우리는 가끔 본다. 합리성에 바탕을 둔 서구인의 음주 문화에 비해 우리 음주 문화는 병적일 만큼 무분별하고 지나친 것만 같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음주문화가 이와 같이 비합리적인 것은 우리의 인간주의 문화와 과거 농경사회에서 음식이 부족한데서 이루어진 음주 문화인 것으로 추정 된다. 왜냐하면 60년대 이전에는 술이 아주 귀했다. 그래서 술대접을 하는 잔치 날이나 초상집에서는 큰 잔으로 술을 대접하는 것이 자랑으로 여겼고 잘 대접받는 것으로 하객들도 받아드렸다. 이런 생각이 그 시대의 사회통념이었다. 그래서 독한 술을 많이 권하는 것이 미덕이 되던 시대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폭탄주“니 ”원샷“이니 하는 뿌리는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음주문화도 하루 속히 바뀌어 져야 한다. 자기가 알아서 먹을 만큼 자신의 따라서 마시는 서양식 음주 문화로 바뀌어 져야한다. 음주시간도 마찬가지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더욱 음주시간도 초저녁으로 바꾸어 져야한다. 타 대도시에는 집에 가는 데 초저녁을 넘기면 여관에서 자야 함으로 초저녁에 술자리를 마치는 데, 제주에서는 술집에서 집에 가는데 택시든, 대리운전이든 몇 분이면 가기 때문에 밤새 술의 향연을 치루는 문화가 있다. 언젠가 어떤 문인이 한국은 온통 ‘레스토랑’ ‘단란주젼 천국이라면서 한국인의 술의 문화부재를 비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저 먹고 마시는 문화, 그것도 천편일률적인 “술”문화 뿐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그의 지적에 깊이 동감 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여 보면 술집이나 식당에 가는 사람들은 한국의 평범한 이른바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식당이나 술집이 아니라 ‘필드’나 ‘리조트’나 ‘룸살롱’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한국인들이 주로 먹고 마시는 식의 음주 문화는 이런 문화가 가장 짧은 시간에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문화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이른바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은 열악한 ‘음주문화’로 중산층의 가슴을 달래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음주 문화는 야식과 술을 겸해 오늘과 내일의 노동을 위한 자투리 시간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휴식문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휴만 되면 해외 여행객이 장사진을 이룬다는 보도가 헤드라인으로 장식하지만, 실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보면서 술과 야식으로 잔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해외여행, 필드, 리조트, 룸살롱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뿐이고, 그들의 휴일저녁은 고기 냄새로 진동하는 ‘원샷’과 ‘폭탄주’로 얼룩진 회식자리 속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폭탄주’ 음주문화는 고쳐져야만 할 것이다. 더구나 제주도의 음주시간도 초저녁으로 고쳐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음과 과도한 음주시간은 다음날 생산성과 자신의 건강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