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

2018-06-17     김재호 한국금호동물병원 수의사

호주 구달 박사 자신 뜻대로 생 마감
스위스서 ‘성공적’ 마무리
생태주의자 니어링도 스스로 결정

병원 ‘자연스러운 죽음’ 인정 않아
첨단장비로 저지하거나 연명
마지막 순간 ‘인간다운 죽음’ 바람직

 

지난 5월2일 안락사를 금지하는 자국법을 피해 스위스로 떠난 올해 104살의 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였던 호주 출신 데이빗 구달(David Gudall) 박사. 그는 스위스 바젤의 한 클리닉에서 자신의 뜻대로 의료진의 도움으로 숨을 거두어 긴 삶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최고의 유산은 가족들에게 편안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설계했다. 구달 박사는 “더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는데 기회가 생겨 기쁘며 의료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답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 구달 박사는 마지막 순간엔 베토벤 교향곡을 듣겠다고 말했다.

집에서 생을 마치면 모두가 편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며 안락사를 금지하는 자국의 법률 체계를 비판하기도 했다. 구달 박사는 삶에 대한 마무리 계획 등을 공개리에 말해 안락사 문제를 세계적인 토론주제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평소 계획한 대로 가족들과 이별 인사까지 차분하게 마무리했다.

1932년 뉴욕 생활을 청산한 뒤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낡은 농가로 이주하여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돌집을 짓는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았던 생태주의자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 그는 100세 되던 해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부인 헬렌 니어링은 남편 스코트의 침상에 앉아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마치 동양 어느 고승의 죽음과도 같은 모습으로 남편이 떠난 뒤 헬렌은 스코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병원의 최대 고객은 노인이다. 노화는 병이 아니며 노인은 어딘가 안 좋은 게 ‘정상’이다. 그것은 노화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의사를 찾거나 약을 복용한다 한들 더 좋아질 리가 없다.

노화를 의료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과 환상이야말로 노인으로 하여금 삶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게 하는 주범이다. 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역할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죽음’ 혹은 ‘죽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이다.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의사니 약이니 병원이니 하며 법석을 떠는 사람에게 자연사란 너무도 허황된 소망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행하는 온갖 의료 조치 때문에 고통스럽고 불편한 순간들을 겪으며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첨단 의료장비로 죽음을 저지하거나 늦추려 하는 의료행위가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방해하고 있다. 병원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이라는 절차는 원래 조용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생을 마무리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살아있는 매순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죽음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쓴 미국의 의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태어남은 내가 할 수 없지만 죽음의 순간은 내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의료가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 이라고 강조한다.

2018년 2월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심폐소생술·항암제투여·혈액투석·인공호흡기착용 등 임종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에게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환자가 원할 경우 중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법 시행 4개월 만에 사전의향서 2만5000건·연명의료 중단 2000여 건 등으로 더 나은 삶, 더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다.

의학이 놓치고 있었던 삶의 마지막 순간 ‘인간다운 죽음’의 문화가 정착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