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
우리나라 주변 정세 급변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 잇따라
국가 리더십 중요성 부각
백성 우선·소통의 세종 리더십
과학 음악 발전·영토 확장 많은 치적
정치이념·리더십 21C에도 유효
최근 우연한 기회에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바로 앞 지하광장에 설치된 ‘기념전시관’을 둘러봤다. 운 좋게도 이곳에서 대왕의 관심사, 가치관광 정치이념 및 리더십 등은 물론 왜 대왕이 남녀노소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왔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러 역사적인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지적이며 빠르고 영민한 판단력의 소유자로서 토론을 좋아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품성을 헤아릴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 싼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혀 예사롭지 않은 상황들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정책기조 하에서 규제가 강화된 내수시장이나 수출시장의 상황 또한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극한 어려운 국면으로 내몰리는 추세가 역력하다. 특히 통일과 평화를 모토(motto)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 현재와 미래의 지속가능한 우리 운명의 전도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이 내달 12일로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리더십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미래를 확고히 다지고 책임질 것 같은 리더십의 부재가 역력하다. 물론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크게 와해돼 버렸기에 할 말은 없을듯하다. 그렇더라도 대다수 국민은 정치권을 새롭게 이끌 출중한 리더십 소유자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이 돋보이는 그런 리더십의 소유자들이 할거하는 상황이 조속히 복원될 필요가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광화문 전시관에서 600여 년 전 세종대왕이 사고(思考)했고 실천했던 가치관과 정치이념·리더십 등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나라의 안위와 백성의 평안함을 최우선시 했던 대왕의 고민을 전시된 몇 가지 자료를 통해서 말이다.
대왕 또한 그 당시 상황이 조선개국 이후라 민심이 뒤숭숭한 가운데 권력 다툼의 극심한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서 가까스로 대왕의 자리에 등극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그 당시 상황과 지금의 변화된 시대 상황을 대비시켜보기도 했다.
여기에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역사학자 카르(E.H. Carr)의 말이 떠오른다. 이 관점은 대왕이 위기 탈출 해법으로 제시했던 민본사상에 입각한 그의 가치관과 정치이념·리더십 덕목 등이 현재의 정치적 리더들을 위해서도 충분히 통용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을 높여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첫째, 대왕은 백성우선(중심)주의의 발로에서 ‘나라의 일이란 오직 백성을 위해 필요하고 쓸모 있어야 한다’는데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더 평안해 질 수 있다’는 가치관과 통치이념을 제시했다.
둘째, 대왕은 관계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백성에게 믿음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진실로 차별 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군왕으로써 어떤 경우이든 차별적으로 백성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대왕은 ‘사람을 사귐에 있어 친하면 반드시 벌어져서 틈이 생기고 마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며 ‘상대국과 외교를 함에 있어 서로 그간의 친밀함만 마냥 믿지 말고 더욱 예도(禮度)를 다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대접하는 것이 정도’라고 했다.
셋째, 대왕은 소통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필요한 판단 또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경청하되, 특정인의 말만 가지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왕은 ‘자신이 구중궁궐에서 정사를 보는 관계로 백성들의 일을 다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만일 이해관계가 백성들에게 절실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위에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대왕은 ‘모든 일은 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옳다고 할지라도, 아래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여 숨김이 없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생각건대 대왕은 ‘백성이 중심이 되고 백성을 위한 정치’와 탕평적인 인재등용 등을 통해 과학·음악·기술발전 및 영토 확장 등 많은 치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 모두 600년이 흐른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절실한 덕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