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힘, 봄바람 이어 봄꽃 만개시키길”

2018-03-27     이종일 공연 연출가

 

내달 평양서 우리공연단 공연
‘가왕’ 조용필 등 남한 가수 참여
13년간 중단됐던 ‘문화’ 교류

이번 공연 특별한 성과 기대
내달 3일 ‘남북협연’ 감동의 무대
대한민족에 꽃피는 봄날 계기 희망

 

“봄이 온다” 겨울을 견뎌낸 모두에게 반가운 소리다. 특히 올해 한반도의 우리 한민족에겐 더욱 그러하다.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 제목이다.

지난달 8일 평창동계올림픽을 축하하는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이 강릉과 서울에서 펼쳐졌다. 공연은 당초 ‘이데올로기’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봄 햇살처럼 남북 대립의 언 땅에 숨을 불어넣었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춘분을 보내고 며칠 후면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와 방남 공연에 대한 답방의 의미를 담고 우리 예술단이 평양공연을 펼친다.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이 동토를 녹였다면 우리 예술단은 봄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된다.

삼지연관현악단은 관현악단답게 대규모의 관악기와 현악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곡들을 수준 높은 연주 실력으로 일사분란한 조직의 힘을 과시하면서도 유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조직력보다는 개인기 위주의 공연이 예상된다. 남한을 대표하는 남녀 가수인 조용필·이선희를 필두로 아이돌 그룹까지 각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가수로 구성된다고 한다. 남북의 협의에 의하면 4월1일은 우리예술단의 단독공연, 3일 2차 공연은 남북한 협연으로 진행된다.

13년 만에 북한에서 열리는 공연의 참가자 중에는 ‘가왕(歌王)’ 조용필이 단연 관심을 끈다. 13년 전인 2005년 8월 23일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그의 단독콘서트를 끝으로 중단됐던 문화교류의 첫 무대에 다시 서기 때문이다.

당시 공연의 연출로 참가했던 필자는 한여름 밤의 추억들이 새삼스럽다. 이번 공연은 정부 주도의 국가행사이지만 당시는 민간교류차원이어서 준비과정이 원활하지 못했다.

스태프들은 공연 닷새를 앞둔 23일 인천공항을 이륙,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연장비는 인천항에서 배편으로 서해를 가르고 남포항에 입항한 뒤 육로를 통해 평양으로 오기로 했다.

그런데 운송계획이 크게 빗나가면서 큰 차질이 빚어졌다. 컨테이너 22대 분량의 공연장비와 발전차·중계차 등 8대의 차량이 도착한 남포항은 하역시설이 미흡, 컨테이너를 열고 그 무거운 장비를 일일이 손으로 내려야 했다. 특히 컨테이너를 운반할 전용트럭이 없어 한국전쟁 때나 보았던 러시아제 군용트럭 22대에 나눠싣고 덜덜거리며 공연장에 도착한 것은 이틀이 지난 20일이었다.

밤샘 작업으로 모자란 시간을 보충해가며 가까스로 총 리허설을 마치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평양시민을 맞이했다. 공연장으로 진입하는 평양시민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장관이었다. 여성들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복에 양산을 들었고 남성들은 검정 양복바지에 흰 셔츠로 통일해 입고 공연장을 향해 단체로 다리를 건너 넘어오던 모습은 마치 과거의 개화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드디어 역사적인 공연의 막은 오르고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무대는 화려하게 돌아가고 가왕의 열창은 공연장을 압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관객들에게 “오빠”라는 환호성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평양시민들은 함성은 물론 박수장단도 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응시할 뿐이었다.

비로소 마지막 곡인 ‘홀로 아리랑’이 끝나고 나서야 미뤄뒀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평생 열광적인 반응을 받으며 무대에 섰던 조용필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당황했고 가장 힘든 공연이었다고 고백했다.

후에 북측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는 이해가 됐고 오해도 풀렸다. 북한의 관람 문화는 공연 도중에 박수나 함성을 지르는 것은 ‘실례’라고 했다. 아무튼 공연관람 태도와 방식 뿐 아니라 의상도 통제하고 지정하는 사회에서 ‘자유’는 멀어보였다.

이번 평양공연에서 가장 주목할 성과는 3일 열리는 공연에 다양한 협연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것이다. 북한 뮤지션의 반주에 남한 가수가 노래하고 듀엣으로 같이 화음을 맞춰 노래한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남북한의 예술인들이 먼저 같은 무대에서 호흡을 주고받고 눈빛을 맞추며 감동을 이끌어내면 곧 이어 열릴 남북정상회담의 무대에도 봄이 오리라 믿어본다. 이미 산하에는 봄이 내렸다. 이제 대한민족의 삶에도 지나가는 봄바람에 그치지 않고 꽃피는 진정한 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