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한 마리로 봄이 시작될 수도”
남북 평창올림픽 기점 ‘훈풍’ 모드
정상회담·조건부 핵 포기 등 합의
아직은 제비 한 마리 날아왔을 뿐
경수로 등 ‘배신의 경험’도
그래도 하기 나름 성과 충분히 가능
‘한반도의 봄’은 사람하기 달린 때문
제비는 대표적인 봄의 전령사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노래도 부른다.
그 제비가 한반도에 날아들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과 대립의 역사에 변화가 기대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체제 출범이후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봄’이 그것이다.
남북의 ‘훈풍’은 지난달 9~25일 치러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일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불과 한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북한의 참가가 전격 결정됐다.
‘독불장군’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희망하고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힐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그게 아니었다. 속도전, 그 자체였다. 1월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이어 19일 ‘북한의 5개 종목 46명 참가와 개회식 공동입장 및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 합의됐다.
1월25일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단 입국, 2월6일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입국, 7일 북한 응원단·태권도시범단·기자단 등 입국, 8일 삼지연관현악단의 강릉공연 등 한 달 전만해도 꿈같던 일들이 현실로 진행됐다.
그리곤 9일 김정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북한고위급 대표단이 2박3일 일정으로 날아왔다. 이른바 ‘백두혈통’ 김일성 핏줄로선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은 김여정의 행보는 ‘파격’이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일어서서 끝날 때까지 기립 상태를 유지하며 ‘경의’를 표했다.
김여정의 방남 기간 문재인 대통령과 한번쯤 만날 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도 깨졌다. 둘은 4번이나 자리를 같이했다. 첫날 개막식에서의 다정한 악수, 이튿날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친서를 미소와 함께 주고받는 장면,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공동 응원과 격려, 마지막 날 국립서울극장에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모습 등은 ‘절친’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들이 돌아가고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단일팀 여자아이스하키의 남북한 선수들은 눈물로 이별을 했다. 남과 북이 한 민족임을 새삼 느낀 것이다.
이번엔 우리 차례였다. 지난 5·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했다. 성과는 상상이상이다. 정 실장이 발표한 합의문에 따르면 북한은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정상 간 핫라인 설치 △북한 체제 안정 보장 시 핵 포기 △비핵화 등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대화 용의 △대화 기간 추가 핵실험 등 도발 중지 △핵무기·재래식 무기 남측 대상 불사용을 약속했다.
합의문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해빙의 봄을 넘어 평화의 여름도 가능할 전망이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남북 대결로 인한 민족적 역량의 낭비는 물론 군사적 대립에 따른 국방비 등 경제적 비용 또한 엄청나다.
이제 최상을 지향하면서 최악도 대비해야 한다. 이번이 겨울이후 처음 날아온 제비가 아니다. 우리에겐 ‘배신의 경험’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이래 6자회담 등을 통해 ‘경수로 제공과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등 수차례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하나도 지키지 않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 보수정권이 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도발을 주문했던 ‘북풍(北風)’ 공작의 기억도 불쾌하다. 그래선 안되지만, 그럴 리도 없지만, 이번은 6·13 지방선거 등을 겨냥한 진보 여권의 ‘훈풍(薰風)’일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어림없는 상상도 해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제비가 한 마리 날아왔을 뿐 봄이 오진 않았다는 점이다. 화창한 어느 날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머지않아 봄이라는 뜻이지”하며 유일한 ‘재산’이었던 외투를 팔아버렸다가 다음날 매서운 추위가 들이닥치자 떨면서 후회했다는 청년의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할 것이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진 않는다’는 격언도 있다.
그러나 제비 한 마리로 봄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자연의 봄은 하늘을 봐야하지만 한반도의 봄은 남과 북, 사람이 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긴장 완화, 멀리 통일로 가기위한 훌륭한 걸음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