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캠퍼스 단상

2018-03-07     김은석 제주대학교 교수

동면 캠퍼스 깨우는 새내기 발걸음
대학생활 ‘낯선 진리의 여행’
지혜 찾고 스스로 삶 행로 결정해야

괴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 설파
끊임없이 변화하며 정체성 확립
밝은 태양 위해 사랑하고 잘 배우길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자연의 이치 앞에서도 지난 겨울은 그렇게 쉽게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삼라만상의 존재론적 이유가 어디 겨울에만 있으랴.

세상에 거저 피는 꽃은 없다. 더더욱 마지못해 피는 꽃은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10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간은 그 누구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살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3월 신학기를 맞아 동면하던 캠퍼스를 깨우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여간 반갑지 않다. 역시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로부터이고, 그들과 더불어 열띤 토론 속에서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나는가 보다.

교육의 목적이 지식 창출인지 아니면 인성 함양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플라톤은 “교육이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따르자니, 벌써 첫 강의시간이 긴장이 되고 부담스러워진다.

유럽인들은 인류문명사의 위대한 발명품인 대학을 가리켜 신들의 경기장에 비유한다. 그 곳에서 신들은 저마다의 교리나 이데올로기·각종 실험을 설파하면서, 때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고, 때론 서로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은 한 가지 도그마가 지배하는 아집의 성(城)에 머문 느낌이다. 오직 하나의 목표인 취업전략에 쏠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향후 몇 년 내로 대학캠퍼스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라인 강의야말로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교육효과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서 영혼의 울림은 가능한 일일까? 탈무드에선 ‘위대한 스승 앞에 내가 앉았을 때, 그때 비로소 위대한 교육이 태어난다’고 한다.

대학이 지식의 단순 전수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을 무슨 대단한 복지정책으로 떠드는 나라에서 돈 안 되는 학문은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살아가도록 방치되지 않는 것처럼 인류가 발명한 대학 또한 그 나름의 존재론적 이유가 있다. 대학에는 수많은 전공 분야가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길을 가지만 각 전공분야는 삶의 궁극적 문제로 귀결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새내기들은 취직 걱정에서 벗어나 잠시 인생의 긴 여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대학 생활이란 한 조각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적 단편이면서도 영욕의 인류사를 쌓는 의미 있는 한 장의 벽돌이어야 한다.

돈벌이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생활은 마치 역사의 길을 따라 나선 여행자의 경험과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보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이다”라고 괴테는 말한다. 새내기들은 인류가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낯선 진리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긴 동면에서 깨어나 이제 대학 문을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행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 스스로 인생행로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 정체성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결국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할 때 정말 즐거운 가라는 물음에 눈을 뜬 자만이 진정한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벽돌을 쌓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파우스트’를 25살에 시작해 죽기 한 해 전인 82세에 완성한 괴테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고 말한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스런 소크라테스의 고난의 길을 택했던 세기의 이 지성은 자신의 삶을 세 단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배웠노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전에 반드시 칠흙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다. 동면하던 캠퍼스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들이여! 밝은 태양을 위해 사랑하라, 괴로워하라,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