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분들, 편안하십니까”

여학생 ‘엄마’되며 직장·가사·양육 ‘삼중고’
맞벌이비율 전국 최고·남성 육아휴직은 최저
도내 성폭력 상담 하루 3건꼴 집밖도 힘들어

2018-03-07     문정임 기자

1908년,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근로환경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여성 운동의 출발을 알린 지 올해 110년을 맞는다. 그 사이 여성운동의 의제는 노동여건 개선에서 물가안정, 남녀차별 철폐, 여성빈곤 타파 등 삶 전반으로 넓어졌다. 여성들의 삶은 얼마만큼 나아졌을까. 오늘, 제주 여성들은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편집자주>


퇴근한 여성들은 가방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싱크대로 향한다. 하루 종일 학원을 돌다 온 아이들이 배고플까 서둘러 밥을 안치고,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들어주는 틈틈이 빨래를 돌리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훔치면서 저녁상을 차린다.

제주여성들의 하루는 고단하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제주지역 맞벌이 비율(통계청, 2017)은 60.3%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결혼한 여성의 절반이상이 직장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의 삶은 더 고되다. 혼인신고 5년 이내 제주지역 부부의 맞벌이 비율(47.2%)은 서울(52.1%)·세종(50.5%)에 이어 전국 세 번째다(통계청). 이쯤 되면 남성들의 육아휴직 비율이 타 지역보다 높아야 하지만, 2017년 고용노동부 통계는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어나는 전국 추세와 달리 제주지역은 전년대비 13.3%P나 감소했다고 알려준다.

우리나라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2010년 2.0%에서 2017년 13.4%(9만123명 중 남성 1만2043명)로 뛰었다. 그러나 맞벌이 비율과 비교하면 남성육아휴직자의 비율은 미미하다. 이마저도 남성 육아휴직은 근로자가 많은 대기업에 몰려있다. 소규모 영세사업장이 많은 제주지역 부부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특히 제주는 부부가 함께 벌어도 소득이 낮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도내 혼인신고 5년 이내 맞벌이 부부의 근로·사업소득은 연간 △1000만원 미만 18.5% △1000만원이상 3000만원 미만 28.8% △5000만원 이상 27.1%였다. 이중 3000만원 미만 저소득 구간은 전국 평균보다 각각 4.3%p, 7.5%p 높고, 5000만원이상 고소득은 전국보다 11.8%p 낮았다.

학창시절 남학생과 똑같이 경쟁하던 여학생들은 출산과 함께 돈벌이와 집안 일, 양육의 3중고에 갇힌다.

힘이 약한 여성들은 때로 남성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17년 제주여성인권연대에 접수된 성폭력 상담건수는 총 1061건. 하루에 3건 꼴이다. 2016년 931건보다 늘었다.

상당수가 직장에서 발생해 적극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좁은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은 피해구제보다 신상노출을 염려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성 정책이 공약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면면을 보면 일자리 확대나 양성평등 캠페인 강화 등 여성의 일상과 한 발짝 떨어진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면 오늘 제주 여성들이 느낀 고단함을 덜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내 여성계 관계자들은 “정치권에서 아무리 좋은 양성평등 제도를 만들어도, 지역 실정에 맞지 않으면 제주여성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며 “불필요한 회식을 줄이거나 제 시간에 직원을 퇴근시키는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부터 여성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기 시작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