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민주주의
공동체 문제 해결위한 ‘대리인’ 선출
차악이라도 선택 ‘최악’ 막는 게 선거
올해 6월 13일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제주도의 경우 도지사와 교육감은 물론 도의원·교육의원과 비례대표 등을 선출한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 했는 바, 올해 6월에 그 꽃이 피는 것이다.
관용어처럼 쓰이고 있기는 하나 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했을까?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지만, 여러 한계로 인해 우리를 대신하여 정책결정을 할 사람을 선출한다.
그렇기에 일상적인 정책결정에 일반국민이 참여할 기회는 거의 없는 것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유일한 길이 투표이고, 선거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꽃에 비유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4년에 한번 내가 살고 있는 삶터의 가장 가까이에서 정책을 결정할 사람들을 선출하는 선거를 앞두고, 한 번은 숙고해 볼 만한 3가지 이슈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 ‘정치’의 중요성이다. 일상생활에서 피부에 와 닿지는 않지만 항상 새로운 정책이 논의되고 최종 집행이 결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대중교통 개편 등의 제도들이 어떤 형태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칠지 결정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에서 잘못된 결정들이 내려질 때 내 삶의 문제,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내 삶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선거’이다.
둘째, 선거를 통해 우리는 대표자가 아닌 ‘대리자’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대표자와 대리자는 유사한 용어로 보인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정의에서 또한 ‘국민들이 개별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여 정책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대표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자는 ‘나’ 보다 앞선 자리에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읽히는 반면 대리자는 ‘나’의 지시에 따라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전적 정의가 명백히 다르지는 않지만 필자는 ‘나’를 대신하는 대상에 대해 그 권리를 수동적 또는 주도적으로 받아드리는가의 차이를 말하고자 싶다.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이 아닌, 나의 이익을 더 적극적으로 대변해 줄 사람을 선출해야 하는 것이 ‘선거’이다.
셋째 ‘참여’의 중요성이다. 플라톤은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최악의 결과를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한 표가 선거결과에 영향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 비슷비슷한 경력에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다는 생각에, 내 한 표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결정한대로 내 삶이 흘러간다.
안타깝지만 최선이 안 된다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도 안된다면 차악이라도 내 손으로 결정해, 최악의 상황만은 면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선거’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용어 중에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는 것이 있다. 이는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순간 폭발하는 것 또는 지금까지 지속되던 상태가 급변하던 것으로 정의된다.
촛불 하나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나 광장의 촛불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티핑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다면, 행동으로 옮겨내는 ‘티핑포인트’는 바로 선거일 것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