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움들

2017-12-20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사람 사는 모습도 아름다운 제주
질서에서 찾을 수도 있어
신호등·표지판·횡단보도 ‘개선’

보행자 위해 잘 서주는 자동차
좁은 등반로 교행시는 가슴 내주며
내년 질서·양보·용서의 해 희망

 

제주도는 자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아름다워야 한다고들 한다. 이 말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제주인들과, 그리고 제주인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닐 우리 후손들의 자부심이 걸려있다.

한 술 더 떠서 자연이 본토보다 더 아름다운 만큼 사람 사는 모습도 더 아름다울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지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 그 가운데 문득 ‘질서는 편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표어를 떠올린다. 길에서 마주치는 또는 마주치고 싶은 아름다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신호등이다. 오래 전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 보았던, 좌·우측 및 맞은편의 교통 상황에 따라 빨강·파랑·노랑 색깔이 바뀌는 신호등이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아스팔트 바닥에 매립된 센서로 작동하는 장치로, 교차로 한 곳에 설치하는 비용이 약 4000 달러라고 했다.

현재 제주시 일부 지역에서와 같이 교통 밀집지역의 일정 구간에 대해 교통신호를 연동시키는 장치와는 다른 것이다. 교통량이 불규칙한 비교적 한적한 교차로에서 특히 더 쓸모가 있는 독립형(Stand-alone) 신호등으로서 아직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우리 제주도에 도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방에 자동차가 없는 사거리에서 불필요하게 정차하여 엔진을 공회전 시키는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은 연료비와 시간에 그치지 않는다. 운전자의 조급증과 법규에 대한 불신이 누적됨은 물론 나아가 법 경시 풍조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을 제주특별자치도가 앞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는 교통표지판이다. 예전에 종종 보았던 ‘정지(STOP)’나 ‘양보(YIELD)’ 표지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작은 길에서 나오는 차량은 큰 길의 차량에게 양보해야 하고, 비슷한 크기의 길에서는 먼저 도착한 차량이 우선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실천이 문제다. 애매한 상황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아 교통 혼잡은 물론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신호등을 설치할 만큼 교통량이 많지 않은 곳일수록 이러한 교통표지판은 아름다운 질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보행자우선도로’라는 표지판을 제주특별자치도가 전국 최초로 설치할 수는 없을까? 즉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좁은 길은 차도도 아니고 인도도 아니지만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개념이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보행자와 차량 간의 접촉사고에 대해서는 차량의 책임을 더 중하게 묻는 제도다.

셋째는 횡단보도다. 영국의 횡단보도는 자동차가 보행자를 위해 서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것을 ‘자동차와 사람 사이의 우선순위’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걷는 사람이 차를 타고 있는 사람보다 먼저 그곳에 와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잘 서주는 전통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모르나 구 제주 동문통 조일약국 앞 횡단보도는 유별나다. 지날 때마다 참 아름답다.

끝으로 한라산 등산로다. 특히 겨울철에는 적설로 인해 등반객들의 통행로가 좁아 들게 된다. 그러면 마주치는 사람들은 서로 피하기 위해 등을 돌리기 마련이었다. 이럴 때마다 등에 돌출돼 있는 등짐이 길을 더욱 좁게 만들어 통행을 어렵게 하기 일쑤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서로 스치는 사람끼리 등을 돌리지 않고 가슴을 내어주는 금년 겨울의 한라산 등산로를 상상하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새해는 제주 4.3 70주년이 되는 해다. 질서와 양보와 용서의 해 2018년이 되었으면 한다.

‘도시’는 ‘구역’과 다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예로 들면 예전의 송도 해수욕장 앞바다를 매립한 송도 간척지와 기왕에 인가가 없던 영종도에 말뚝을 박고 거기에 새로이 산업·문화·국제업무·휴양 및 주거시설 등을 유치하고 있다.

도시는 사람이 사는 곳이다. 긴 역사와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그곳에서 살아온 기존의 주민들을 품에 안고 무엇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제주특별자치도이자 제주국제자유도시다. 사람도 아름다운 도시 제주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