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의 새로운 가능성 ‘귤피(橘皮)’

2017-12-05     송상열

며칠 전 ‘황감제(黃柑製)’ 재연 행사
조선시대 귀했던 감귤의 위상
열매 함께 껍질도 귀한 대접 ‘진상’

귤피 산업화·발전 가능성 충분
이력제·유기농 등 대안 필요
감귤산업 고도화·다각화에도 기여

 

며칠 전 도내에서 황감제 재연 행사가 있었다. 조선시대, 제주 귤이 임금께 진상되면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에게 감귤을 나눠주며 과거제를 시행했는데 이것이 ‘황감제(黃柑製)’이다.

황감(黃柑)은 ‘황금빛 감귤’이란 뜻.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갖 귀한 토산품들이 진상됐지만, 이를 기념해 과거제를 치른 것은 감귤이 유일하다. 명종 때 시작된 황감제가 3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니 당시 감귤의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귀했던 감귤이 현재는 값싼 과일로 치부되며 우리 식탁에서 외면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감제를 재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황감제는 과일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절, 한때의 영광이었을 뿐일까하는 의문을 갖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감귤이 가진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주목하고자 한다. 맛과 당도로 따지면 열대 과일에 못 미치지만, 귤피(橘皮)가 가진 약재로서의 효능으로 접근한다면 귤보다 뛰어난 과일도 없기 때문이다.

한약재에 대해 최초로 서술한 ‘신농본초경’이라는 중국의 책이 있다. 이 책에는 한약재로 쓰이는 365종이 수록돼 있다. 수만 종의 식물자원 중에 선택된 365종은 가히 보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귤피가 들어간다. 과피(果皮)로서는 유일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의과대학에서 배우는 본초 교과서에 수재된 약재 450종에 귤피가 들어간다. 그것도 중요한 약재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며 실제로 임상에서도 손가락 꼽을 정도로 많이 쓰인다.

감귤이 약재로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감귤 껍질인 진피와 청피, 그리고 감귤류에서 비롯되는 약재인 지각·지실도 항상 감귤과 함께 진상되었다. 청피는 덜 익은 껍질이고, 지각은 광귤이나 하귤의 미성숙과이며, 지실은 탱자의 어린 열매로서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한약재들이다.

또한 동의보감에는 껍질만이 아니라 감귤 씨앗과 잎의 효능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것들도 진상 품목에 포함됐었다. 이처럼 감귤은 어느 부위도 버릴 것이 없는 귀한 존재였던 것이다.

지난달 개최됐던 귤피산업화 심포지엄에서는 귤피의 산업화 가능성을 확인하고 다양한 대안이 모색된 바 있다. 우선, 폐기물 재활용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생산과정을 귤피 생산 위주 공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상품가치가 있다면 그에 걸 맞는 귤피 우선의 공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참석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품질관리와 이력제 도입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로부터 귤피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잔류 농약 등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이러한 현대화된 품질관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10년도 안되어 귤피의 시장가치를 50배 이상 끌어올린 바 있다.

심포지엄에서는 재배 단계에서부터 귤피를 유기농으로 관리하여 차별화·고급화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농가소득이 보장된다면 유기농 재배가 점차 확대되어 환경 생태의 복구라는 부가적인 성과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재래귤을 귤피의 기원으로 등록하여 고부가가치의 원천 자원으로 삼자는 제안도 있었다. 현재 대한약전에는 온주밀감의 껍질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나 사실 온주밀감은 1910년대에야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엄밀히 말해, 동의보감에는 동정귤을 귤피의 기원으로 삼고 있으며 전통적으로는 재래종인 진귤(산물)의 껍질을 써 오기도 했다. 재래종의 재배 확대는 기존 감귤의 공급량을 안정화하여 감귤가치를 높이는 역할도 수행할 것이다.

황감제 재연은 단순히 최고 과일로서의 귤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다. 귤피가 가지는 약재로서의 효능과 건강식품으로서의 기능성을 살려서 감귤의 가치를 높이고 감귤산업의 고도화, 다각화를 이루자는 뜻이다. 제주한의약연구원이 개최한 ‘제1회 황감제 재연’ 행사가 감귤의 이러한 가치를 되살리는 작은 시작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