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삶 여기 다 이수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기억으로 만나는 원도심~’ 출간

2017-12-04     문정임 기자

“아기들 어릴 때는 밭에 가면 뱀이 제일 무서운 거. 덥석 깔앙 아기를 구덕드레 눕혀놓고 그땐 밭에서 뱀이 하니까, 뱀이 아기를 물면 아기는 단 번에 죽어 불거든. 아기가 잘 이싱가 살피러 가야해. 볕이 과랑하게 나면 가서 아기구덕드레 옆으로 널빤지로 가려주고, 하이고, 그렇게 구남매를 몽땅 키워서 공부 시키고, 시집 장가보내고, 재산 나눠주고, 하이고, 잘도 해졌다” (묵은 성 토박이, 아흔여섯, 고두연 할머니의 구술 중에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 박경훈)이 원도심의 기억을 가진 어르신들의 구술을 기록해 책을 출간했다. ‘기억으로 만나는 원도심 사람들 이야기’다.

구술자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태어나 어릴 적 4·3과 한국전쟁을 겪고 근대화의 시기를 몸소 체험한 세대다. 삼도리 해녀 강달인 어르신, 무근성 토박이 고두연 어르신, 싸구려점방 아들 고희식 어르신,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우생당을 지키는 고현권 전 대표와 고지훈 현 대표, 300년 넘는 전통 초가를 지키시는 안순생 어르신, 무근성 꽃집 이모 양정숙 어르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책은 구술자들의 전 생애를 통해 원도심에서 벌어졌던 생명의 탄생과 학창시절, 결혼, 육아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진 ‘살아있는 역사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순자(제주어연구소), 김진철(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김신숙(시트러스 구성작가), 양혜영(제주작가회의), 이나연(씨위드 대표), 정신지 작가가 어르신들을 한 명씩 만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이들은 구술자와 작가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구술자들이 중점적으로 기억을 품고 있는 시간에 들어가 작은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기억을 호출하고자 애를 썼다.

제주 원도심은 문화 행정 교육의 중심지에서 1980년대 초반 급격한 도시 공동화를 겪으며 활력이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곳에는 오래전부터 제주 원도심을 지켜온 이들이 건재하고 있고, 역사와 문화, 삶이 녹아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업은 원도심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기념 행사는 5일 오후 4시 예술공간 이아에서 열린다. 출판기념행사와 더불어 ‘기억으로 만나는 원도심 사람들 이야기’의 아카이브 전시는 12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 로비에서 진행된다.

이 책은 원도심 지역에 인문학적 가치를 조명해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재생사업의 하나로 제작됐다. 비매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