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갈등’ 이주민과 원주민
이주민 늘며 교통 등 주거 환경 복잡
따지면 원주민도 이주민 ‘상생’ 필요
최근 들어 출퇴근시간이 아니더라도 제주시내는 항상 차가 막히는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교통 체증이 심각하다. 구도심에서 신제주로 가려면 자동차로 20분 이상 소요되기 일쑤다. 또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통해 중앙차로제니 버스전용차선이니 하며 차선 및 신호체계가 바뀌는 바람에 운전자는 혼란스럽고 잘못하면 돌아가기 일쑤다.
아직 적응이 안되는 모양새다. 시외지역 교통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촌에 일보러 가다보면 특히 조천읍 교래사거리는 항상 체증이 심하다. 교차로를 넓힌다고 하는데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생각보다 일찍 나가야 되는 상황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내에서도 목적지까지는 거리만 생각하면 됐었는데, 이제는 거리보다 교통상황을 더욱 고려해야만 한다. 휴일이나 밤 시간 대엔 5분거리도 차가 밀리는 시간대엔 30분이상 지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통체증은 일상화 돼버리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마음이 급해진다.
주거환경도 복잡하다. 재활용쓰레기도 요일별로 배출해야 된다.
간만에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니 주변이 온통 집들 뿐이다. 앞에 오름도, 뒤편의 한라산도 시원스럽지 않다. 한가했던 마을이 공동주택과 차로 뒤범벅이다.
퇴근시간 무렵 차를 끌로 나올라치면 벌써 막혀 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제주 땅값은 살고 있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혹자는 나중에 자녀들은 집 없이 사는 세상에 살겠구나 생각한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대출인생’이다.
제주인구가 늘기도 했지만 도시 쏠림현상이 한 몫하기도 하는 것 같다. 교육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생활환경 또한 도시화되는 정책으로 맞춰지는 느낌이다.
혹자는 이주민 탓을 하기도 한다. 제주민들도 따지고 보면 예전에 이주민들의 후손임을 알고 있을까. 제주의 삼성신화를 보면 삼신인과 삼공주가 사이좋게 결혼하고 땅을 나눠 살았다.
제주도는 원래 무인도였다.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의든 타의든 제주도로 몰려 왔다. 본격적인 이주는 청동기시대부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제주에 많은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또한 고려시대 삼별초세력과 몽고세력이 제주에 대규모로 온 것을 알 수 있다. 100여년간 원나라의 목호세력이 제주를 지배하는데 원래 제주인들과 동화되어 살아간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배인들과 수많은 관리집단이 왔다가 가기도 한다.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제주사람들이 제주를 떠나기도 하는데, 제주인구가 급작스럽게 줄자 1600년대부터 200여년간 일반 백성들은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제주에 갇혀 살게 된다.
아마도 이때부터 폐쇄적인 삶과 생각이 제주인의 맘속에 자리하게 된 것은 아닐까. 또 4·3으로 인해 더욱더 피해의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원래 제주섬은 열린 공간에서 살았을 것이다.
고대 탐라시대부터 배를 이용한 무역과 왕래가 성행했음은 고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원래 제주는 개방적인 곳이었다.
요즘처럼 대규모로 이주열풍이 분 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많이 오고 있다. 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갈등은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아마도 생활의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불편함은 기존 제주도민과 이주해 온 정착민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로 갈등의 폭은 커가는 것이다.
아마도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영역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문화란 일방적일 수 없듯이 삶도 마찬가지다. 편견은 오해를 낳고 갈등의 소지가 된다. 아마도 금전적인 이유가 많을 것이다.
제주살이가 이주민뿐만 아니라 제주민들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럴수록 큰 틀에서 상생이라는 자세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서로가 인내할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이주민으로 살아갈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