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기

2005-09-30     제주타임스

만일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잎사귀를 사랑하라
모든 동물과 풀들
모든 것을 사랑하라.
네 앞에 떨어지는
빛줄기 하나까지도.
만일 네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를 본다면
날마다 더 많이 모든 것을 이해하리라.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너 자신과 세상 전체를 사랑하게 되리라.’
시인 류시화가 엮은 자연에 대한 잠언시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랑이야기를 읽다가 최근에 만났던 한 여인을 떠올립니다.
키167cm, 몸무게57kg, 35?8?6의 몸매, 갸름한 얼굴에 사슴처럼 긴 목, 쌍꺼풀 진 크고 검은 눈이 그윽한 여인이었습니다.
잘 빠진 미스코리아 출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쭉쭉빵빵 잘나가는 모델이나 미모의 탤런트 이야기도 아닙니다.
미스코리아나 모델이나 탤런트가 아니어도 그들보다 더 예쁘고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얼음처럼 시릴 정도로 명징(明澄)한 파란 영혼에 노란 병아리 솜털같이 가슴은 따뜻하고 포근한 제주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육신 공양하고 떠난 자비와 사랑

지난 11일 입적한 불교 조계종 법장(法長) 총무원장의 법구(法軀겱병纛?시신)가 실험용으로 기증돼 조계종 종단장(宗團葬)사상 처음으로 다비식(茶毘式겧逅만?불태우는 의식)없이 영결식을 치른 후였습니다.
중생에게 육신을 공양하고 떠난 스님의 자비와 사랑이야기가 감동으로 일렁이며 장기기증 운동에 불을 지필 때였습니다.
제주의 한 여인이 생명부지의 어린 백혈병 환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골수(조혈모 세포)를 이식시켜 죽어가는 생명을 구했다는 법장스님과는 또 다른 감동을 접했습니다.
여인은 지난해 TV를 통해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조혈모세포 은행 협회에 조건없이 자신의 골수 기증의사를 전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7월, 자신과 조직 적합성 항원이 일치하는 소년 백혈병환자에게 골수를 공여, 수술을 성공시켰다는 것입니다.
서른 세 살, 어린 아들과 딸을 둔 건강하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어머니가 왜 일 점 혈육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남을 위해 살아있는 자신의 골수를 조건 없이 내어 줄 수 있었을까요.
‘사랑 때문’이라는 말로 엮지 않고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의 전제 조건은 자길 버리는 것

톨스토이는 “자기 희생을 전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의 이름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조건은 자신을 버리는 것 뿐 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썩어야 싹을 틔우듯, 양초가 자기를 태워야 불을 밝히듯, 소금이 제 몸을 녹여야 맛을 내고 부패를 막듯이, 사랑은 조건 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진정성입니다.
그녀의 골수 기증도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성서에는 세상만사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온갖 신비를 꿰뚫어 보는 지혜와 지식을 가졌다 해도, 남에게 모든 재산을 나눠준다고 해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갖고 남을 위해 불 속을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말짱 헛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뜻에서 이 청명하고 삽상(颯爽)한 가을날, 법장 스님과 제주여인의 남을 위해 제 몸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 아름다운 사랑 실천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가슴 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뭄의 단비가 되어 삭막한 가슴들을 촉촉하게 적실 것입니다.
한줄기 상쾌한 빛과 바람이 되어 잠자던 사랑을 일깨워 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더욱 아름답고 포근한 것입니다. 눈물 겹도록 위대한 것입니다.

김  덕  남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