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도지사 당선자 스토리
김태환 도지사 당선자. 그가 걸어온 길은 한마디로 이번 6.5 도지사 선거기간내내 주창해온대로 ‘종합행정갗의 외길이다.
김 당선자는 1942년 5월 21일 북군 구좌읍 세화리 1049번지에서 태어났다. 그 후 해방을 맞은 꼬마 김태환은 2년 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것도 잠깐, 1950년 6.25전쟁을 겪었고 아버지와 막 정이 들 무렵 아버지를 여의는 슬픔을 맛보는 등 내우외환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두 분 누님의 영향속에 초등학교를 보냈던 김태환은 당시에 대해 “어머니의 교육관은 공부보다는 학생의 도리를 강조했고 그 영향을 받아 개근상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기억을 털어놨다.
1953년 세화초등학교를 졸업한 김태환은 세화중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없어 작은아버지를 따라 전북 전주로 유학길에 올라 전부북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와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슬픔은 늘 김태환을 따라다니는 현실의 아픔이었다. 김태환은 이때부터 ‘홀로서기’의 주춧돌을 쌓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만큼 김태환에게 다가오는 세상도 만만치 않았다. 살아가면서 지치고 잠시 머뭇거리고 싶을때, 돌아서서 힘껏 목청 높여 소리지르고 싶어도 맘놓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리움이 사무쳐 밤잠을 설치며 어머니를 부르기도 했다는 김태환 당선자. 그는 “홀로 서서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었던 그때의 그 경험이 가장 큰 교훈이 됐다”고 말한다.
전주고 재학시절 김태환은 ‘좋은 벗 셋이면 세상을 얻는 것과 같다’는 교훈을 믿고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는 외로움에 대한 탈출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 벗들이 지금 전국에서 국가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그에게 오랜 공직생활의 큰 기둥이 되고 있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등 최고의 명문대학의 꿈을 꾸던 그였지만 생활고는 그를 다시 제주로 불러들였다. 1960년 제주대학교 법문학부 법학과에 진학, 사법시험의 도전을 꿈꿔 왔지만 생활고는 그를 전문행정인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1964년 제주시청 재무과 말단(9급)으로 첫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 시절 가가호호를 방문, 세금을 받으러 다니며 서민들의 애환을 직접 피부로 느꼈다.
그는 공직 내부의 소양시험에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 우수한 성적을 얻어 1967년 제주도로 발령받아 농무과 서무담당으로 근무하게 됐다. 그는 이때 지하수 관정업무와 농정업무를 터득하면서 “내가 맡은 업무는 내가 박사가 돼야 한다”는 각오로 일에만 몰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문화공보실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계속적으로 소양고사를 준비, 지금의 행정자치부인 내무부로 발탁되는 행운을 움켜쥐게 됐다.
그 시절,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등록증 발급 업무를 맡아 성공리에 완수함은 물론 국회에서 예산확보의 기법도 터득했다.
이런 시간속에서도 그는 전문지식 함양을 위해 1971년부터 73년까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다녀 행정학 석사를 취득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의 이러한 열정은 마침내 1976년 행정의 꽃이라는 사무관을 달게 했다. 사무관이 된 그는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내무부본부의 민방위국 편성운영과, 지방개발국 근무 당시에는 개발행정의 기법과 이론을 터득하기도 했다.
1982년 드디어 서기관이 됐다. 사무관을 단지 6년만이었다. 그는 서기관이 되면서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게 됐다. 이 때 고향은 그에게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단어로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제주도 행정기획관으로 발령받은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총괄 기획했고 지금의 종합경기장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85년에는 42세의 나이로 남제주군수로 발령받고 1읍면 1관광지 개발 사업을 추진, 성산일출봉, 남원읍 큰 엉개발을 비롯 표선민속촌 등을 개발하는데 혼신을 쏟아 부었다.
1988년에는 제주도 내무국장의 중책을 맡아 도 전체 공직자의 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했다. 이어 1991년에는 제주시장으로 발령받아 탑동매립문제 해결, 봉개동쓰레기매립장 1공구 완공, 삼양, 일도, 노형지구 구획정리와 택지개발 공영개발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3년 6개월동안의 최장수 관선시장을 지내면서 관덕공원의 사적지 지정 등 모든 영광을 제주시민과 누릴 수 있었다.
이어 주어진 제주도 행정부지사를 맡은 그는 2년간의 행정부지사직을 끝으로 33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마감, 대한적십자사 제주도지사 회장을 맡으며 다시 지역주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 1998년 6.27 지방선거에서 제주시장에 출마, 총 유효투표의 60.7%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이어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도 제주시장에 당선, 그동안 민선 2, 3기 시장으로서 전문행정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지난 4월 27일 민선 3기 도지사 궐위와 관련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개척으로 제주도를 세계속에 우뚝 올려 놓고 싶다”는 생각을 이번 6.5도지사 재선거에 당선됨으로써 실현하게 됐다.
앞으로 그의 행보에 도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