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당선자-비관료 출신 첫 단체장 등극
이번 제주지역 6.5재보선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단연 제주시장 선거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선거 초반만 하더라도 김영훈 당선자는 하맹사 열린 우리당 후보에 절대 열세를 면치 못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시중의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김 당선자가 하 후보를 극적으로 뒤집어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사실 이번 제주시장 보궐선거에서 하 후보는 특히 제주시 공무원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이는 하 후보가 과거 제주시 부시장과 기획실장 및 의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면서 시 공무원들과 쌓은 두터운 인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결과적으로 절대적 열세를 극복, 패색이 짙었던 상황을 뒤집으면서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도내 언론인 출신 첫 자치단체장, 비 관료출신 첫 단체장, 지방의원 출신 첫 단체장 등 김 당선자는 제주지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수만은 이정표를 한꺼번에 세웠다.
김 당선자는 선거 시작부터 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상대가 ‘닮은 꼴’인 하 후보이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와 하 후보는 지역 기반이 비슷하고 출신 고교도 같다.
김 당선자가 용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하 후보는 용담동의 이웃인 외도동이 기반이다.
용담과 외도는 도의원 선거구(용담·도두·이호·외도)를 기준으로 하면 같은 지역이다.
두 후보는 또 제주상고 1년 선후배 사이로 나이는 하 후보가 2살 많다. 그러나 고교는 김 후보가 1년 선배다.
이들 둘은 극명하게 비교되는 점도 많다.
김 당선자는 유일한 4선 도의원으로 10여년을 의정 단상에서 보냈다. 출마 직전까지 의장직을 맡기도 했던 김 당선자는 언론인으로서, 체육계 인사로서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반면 하 후보는 36년을 오로지 공직에서 보냈다. 하 후보는 9급으로 시작해 부시장까지 올랐다.
이러다 보니 김 당선자는 유세기간 내내 ‘경륜’을, 하 후보는 ‘경험’을 시장 덕목으로 제지하면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결국 김 당선자는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최후에 승리를 거머쥐고 웃었다.
제주상고와 제주대학을 졸업한 김 당선자는 제주신문 기자로 제직하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김 당선자는 이와 관련, 2001년 7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 받았다.
이후 김 당선자는 지방의회가 시작되면서 지방의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내리 4선 도의원으로 활동해 온 유일한 도의원 출신이다. 도의회 운영위원장과 예결특위위원장, 4.3특위위원장, 내무위원장, 부의장, 그리고 도의장까지 도의회 모든 직책을 두루 거쳤다.
특히 4.3에 대한 활동은 그가 한나라당원이면서도 한나라당원이란, 특정 정당 색채를 느끼지 않은 그만이 갖고 있는 강점이다.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상임공동대표’ ‘4.3특별법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의장’ ‘1901년 제주항쟁(이재수 난)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란 직책이 말해 주듯이 그는 한나라당과는 분명히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그는 이번 공천과정에서도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반면 시민사회단체와도 화통하다는 점이 그가 내세우는 무기이다.
오랜 의정활동과 시정을 집행하는 집행부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가 그의 앞에 과제로 떠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