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세 논란 40년과 제주의 정치

2017-05-07     송경호

관광제주 숙원 사업 ‘입도세’
40년 전 관광객 100만명 때부터
진입장벽 또는 훼손환경 보상책

이번 ‘장미대선’ 후 도입에 기대감
유력후보 4명이 찬성 입장
진정한 정치인은 ‘말’이 아닌 행위

모든 선거는 변화를 이루는 변곡점이다. 변화의 규모는 권력에 비례한다. 권력이 클수록 변화 또한 커진다. 주권자의 기대 또한 마찬가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른바 ‘장미대선’으로 불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나흘 앞두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원하는 것은 뭐든 주고, 바라는 건 모두 이뤄줄 태세다. 선거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그 양상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물론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 액면 그대로 믿는 이 별로 없다. 말은 말일 뿐, 현실은 다르다.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은 말들은 오죽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기대감은 버리지 못한다. 후보들은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하고 있다.

대선 기간 이른바 ‘유력후보’ 모두 제주를 찾았다. 어느 곳에서나 그랬듯 ‘제주의 숙원사업’ 해결을 약속했다. 숙원(宿願)사업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라면 ‘바라지만 잠자고 있던’사업이다. 사전적 풀이는 ‘오래 품어 온 염원 또는 소망’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도시든 그런 소망은 수두룩하다. 제주 역시 마찬가지. 해묵은 과제들이 즐비하다. 이른바 ‘입도세’는 그 대표적 예일 거다. 더러 ‘환경부담금’ 또는 ‘관광세’라는 유사한 제도 명칭도 등장하지만 취지는 마찬가지다. ‘제주라는 섬(島)로 들어오는 데 매기는 세금’이란 거부감을 덜기 위한 유사 낱말일 뿐이다.

입도세가 본격 등장한 건 얼추 40년 전. 1979년 연간 관광객이 100만 명을 넘기며, 화들짝 놀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40년 세월, 입도세는 제주 환경문제의 대표적 키워드 노릇을 해왔다. 문제는 ‘환경’이며 답은 언제나 ‘입도세’. 뻔한 문제에 뻔한 답이다.

이견은 별로 없다. 제한 없이 사람이 몰리며 환경이 무너지는 것은 필연이니 최소한의 진입장벽 또는 훼손되는 환경을 ‘복원’하기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들 모두 주장해왔지만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오늘날 제주에는 연간 1000만 명 이상 몰려들고, 덩달아 환경은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대선은 ‘숙원’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유력 주자 5명 중 4명은 찬성 입장, 1명은 ‘신중한 접근’ 입장을 보였다.

대선 유력 주자들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반가운 징후다. 사안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제주가 크게 앓고 있다고 보는 한 특단의 처방은 불가피하다. 중증환자에게는 대수술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돌아보면 입도세란 제도 도입의 걸림돌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헌법 상 평등 원칙 위배’는 단골 메뉴였다. 밥그릇을 둘러싼 관광 업계의 반발도 그랬다. 다른 도시의 반발도 걱정거리였다.

적잖은 걱정거리들에 가로 막혀 40년 새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장벽은 이미 예견된 것들이다. 뻔히 눈에 보였던 벽이고 걸림돌이다.

문제는 그 장애물을 어찌 돌파해야 할 것인 지다. 한데, 이른바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눈앞에 장벽이 있다는 얘기만 해왔다. 하나마나 한 얘기를 바로 얼마 전까지, ‘워킹그룹’이라는 폼 나는 이름 달고 되풀이 한 셈이다.

독일 정치이론가 아렌트(H. Arendt)는 ‘정치란 행위(praxis)의 영역’이라 정의한다. 아마도 ‘말’이나 ‘생각’의 영역에 대한 꾸지람일 거다.

그에게 있어 ‘행위, 즉 ’프락시스‘란 그 어떤 것을 시작하는 것.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질서와 통념 따위와는 완전히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제대로 정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그간의 수많은 제주 정치인들은 정치한 게 아닌 셈이다. 셀 수 없이 많았던 토론회 등 논의 자리는 결국 이슈를 매장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니 말이다.

아렌트의 말 한 마디 더하면 이렇다. “오늘의 시장이나 사회를 그저 유지 보수해나가는 수단으로 전락한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