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에 젖은 삶
암나비는 늘 억울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꽃과 나비’라며
제 짝을 바꿔놓는다
팔랑팔랑
철쭉꽃 한 무더기에
나비 한 쌍 내려앉더니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저러니까 사람들은
제자리를 모르고 방황하나봐”
지난 봄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바라보는데 철쭉꽃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한 쌍을 보았었다. 윗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썼던 ‘타성(惰性)’이란 내 시(詩)다.
타성에 젖은 채 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표현한 시라고나 할까.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피해자이다. 그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생각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묶인 채 그 테두리 안에서의 인식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편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소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들의 대부분은 조금씩 타성에 젖은 행동을 하고 결론짓는 것들이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 또한 타성에 젖어 있는 일상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 한 예가 ‘분재’에 대한 인식이다. 나는 사실 분재를 싫어하기보다는 좋아하지를 않았었다. 그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철사로 몸을 비틀어서 형을 세운 분재를 볼 때마다 고통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재를 보면서 비좁은 땅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움을 창조해낼까 감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왠지 나를 옭아맨다는 느낌으로 답답함을 느낀 곤 했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보다 무식하면 바보라는 말이 정확히 내게 는 맞는다. 분재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분재에 대해 타성에 젖은 사고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분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보통 나무는 자연에서 길어야 약 500년을 살지만 분재로 키우게 되면 만 년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분재의 분 밑바닥에는 구멍이 여러 개 있다. 가운데 큰 구멍이 있고 옆에 조그마한 구멍들이 몇 개 더 있다. 중심부 구멍은 환기 및 배수의 역할을 주로하고 옆에 있는 구멍들은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철사를 고정 시키는 구멍이다. 나무에 있어서 굵은 뿌리는 나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영양소를 흡수 하는 것은 잔뿌리들이다. 분재는 몇 년이 지나면 화분의 흙이 올라온다. 그것은 뿌리들이 자라기 때문인데 이 때 뿌리들을 솎아야 한다. 굵은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공간을 차지할 필요가 없어서 많이 잘라 준다. 굵은 뿌리의 역할은 철사가 대신하며 많은 공간을 잔뿌리에게 내어 준다. 그로인해 잔뿌리가 많아지고 그로 인해 영양 흡수도 빨라져서 나무는 생기발랄하게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분재의 철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고정관념에 해당하는 굵은 뿌리와 다양한 사고들에 해당되는 잔뿌리.
사람에게 있어서도 타성에 젖지 않고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분재의 굵은 뿌리에 해당하는 고정관념을 시기적으로 잘라내야 하는 점이다.
그리하여 흐름의 공간을 넉넉히 두면 바람이 시원하게 넘나들고 배수가 잘 되어 잔뿌리는 싱싱하게 뿌리를 뻗을 수 있다.
그처럼 사람들 또한 건강한 삶의 단 열매가 튼실하게 열리기 위해서는 낡고 썩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의식의 흐름을 자유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강 연 옥 <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