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숨은 책임자’도 인양하라”
침몰된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날, 제주의 김동수(51)씨는 “내 차를 꼭 보고 싶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沈沒) 당시 김씨는 자신의 화물차와 함께 그 배에 타고 있었다. 배가 뒤집어지며 아수라장이 되자 김씨는 소방호스를 이용해 침몰 직전까지 어린 학생들을 구조했다.
그의 도움으로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학생만 모두 20여명. 김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희생자는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활약상은 구조된 학생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당시 파란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파란바지 의인(義人)’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김씨의 삶은 나락(奈落)으로 빠져들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화물차는 세월호와 함께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사고로 인한 엄청난 트라우마로 천직으로 여겼던 화물차 운전은 물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사고로 받은 보상금도 병원치료로 모두 쓰이면서 가정 자체가 파탄났다. 극도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은 세 번의 자해(自害)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씨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면서도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대책은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정부를 원망했다.
세월호 침몰은 수백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지만, 처벌은 이준석 선장과 세월호 선사 관계자 등 일부에 그쳤다. 특히 당시 구조 및 지휘 계통에 있던 인물들은 목포해경 123정 정장만 유일하게 징역 3년을 받았을 뿐 대부분 처벌을 피해갔다.
구조·지휘 책임자인 해양경찰청장과 안전행정부 장관, 국가재난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 관계자 등이 사실상 면죄부(免罪符)를 받은 꼴이다. 더욱이 국정 총책임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 중이란 보고를 받고도 관저에 머물렀고, 구조가 촌각(寸刻)을 다투던 오후 3시께엔 올림머리를 위해 미용사를 불렀다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없다.
이번 선체 인양을 계기로 ‘세월호 참사(慘事)’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숨은 책임자’도 가려내어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