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등 영양요법 정신질환도 치료

2005-09-02     허계구 논설위원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 어떤 책, 어떤 지식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아주 다르게 바뀌어 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여기에 귀한 의사를 만나(이런 경우에 제주말로 ‘귀인을 만났다’ 하던가.) 자기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이야기가 있다.

■ 로버트


 로버트는 대학교 1학년 때인 18세에 머리가 이상하게 되기 시작했다.
4년 반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전기 충격 요법이며 진정제며 집단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그의 병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는 병원의 지시를 따르지도 않고  눈만 피하면 병원에서 뛰어 나와 달아났다.  결국 치료 불능이라는 판정이 내려지고 병원의 의사는 전전두엽(前前頭葉)의 절제수술을 권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두뇌 속으로 들어가, 사고를 관장하는 두뇌피질과 감정 부분인 두뇌 속의 시상(thalamus)과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난폭함이 사라지고 식물처럼 온순한 인간으로 변한다.
로버트의 가족은 그 수술을 받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서 내보내져 가족에게 맡기어졌다.

그의 증상은 심해져서 그를 계속 괴롭히고 저주하는 목소리가 귀속에서 들리어 오기도 하고 좀 정신이 든 때는 FBI(미연방수사국) 국장에게 편지를 써서 로버트 자기까지 희생시키려는 모종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그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외모에 관심이 없고 목욕도 하지 않고 음식은 주는 것만을 받아먹었다. 일도 못하고 글도 못 읽고 TV도 볼 수가 없었다. 종종 집에서  달아나서는 경찰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담배를 연거푸 피었고  손가락이 노랗게 그을고 피부가 갈라졌다. 면도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빗지도 않고 혼자 웃으며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이렇게 살면서, 봄이 와서는 가고, 여름이 오고하면서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의 나이도 어언 43세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의 병은 죽음만이 그와 갈라놓을 수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기진맥진해진  가족이 그를 레서 박사에게 데리고 와서  비타민 요법을 써 봐 주도록 요청을 했다.

어떻게 이 가족이 이 요법을 듣게 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레서 박사는 사실 이 때만 해도  이렇게 갈대로 가 있는 환자를 식사와 비타민으로 고칠 수 있다는 데 회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사는 자신이 과거 수년 동안 비타민 B제를 복용하여 왔는데 그것이 그가 일을 하는데 지속성을 증가시키고 마음을 더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며 스트레스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또 아내가 자기에게 영양학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어서 유명한 영양학자의 책들도 읽게 되었다.

그는 이 방면에 유명한 오스먼드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다.
“호퍼 박사와 나는 환자의 질병이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그 회복은 느리고 불확실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달리 대안이 없고 그 방법은 해로울 것이 없으므로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하고 말했다.
이 때 마침 레서 박사는 동부로 여행할 일이 있어  동부에 있는 파이퍼 박사와 같은, 이 방면의 개척자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동부에서 캘리포니아로 돌아오는 전날 밤  레서 박사는 메리라는, 최근에, 영양과 비타민 요법으로 정신병에서 회복된 한 부인을 소개 받았고 그 일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는 그 미친 사람인 로버트의 가족에게 그 여자를 고용하여 치료하는데 도움을 받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비타민 B등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하게 하고 저혈당증을 막기 위하여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고 탄수화물의 양을 줄이도록 (저혈당증, 탄수화물, 단백질에 관해서 나는 앞서 더 조은: zone 식사법에서 몇 번 말 한 적이 있다) 하고는  레서 박사는 장기간의 세계 여행길을 떠났다.

5개월 후에 그 의사 부부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로버트는 “박사님!  안녕하셔요.” 하고 미소 지으며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인사를 해왔다. 그는 완전히 그 병의 마수에서 해방되어 TV 보고 독서하며 새사람이 되어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파루메 

위에서 말한 레서 박사 부부는 세계 여행 도중 뉴기니아에 들리게 되었다.
거기에서  선교사를 만났는데 그 선교사가, 레서 박사가 정신병의 치료를 하는 의사라는 것을 알고 마침 교회에 미친 여자가 있는데 이 여자를 봐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이 여자는 35세였는데 목에 쓰레기 주머니를 걸고 깡통들을 팔찌처럼 팔에 두르고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질질 끌고 다니며 너저분해지고 쇠약해져 있어 마치  50세나 된 것처럼 보였다. “이 여자는 병이 생긴지 5년이 됩니다. 그녀의 남편과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내쫓았습니다. 우리가 없었다면 이 여자는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하고 선교사는 말했다.

선교사와 레서 박사가  그녀를 밖에 두고 방안으로 잠간 들어 온 사이에도  비명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마을 아이들은 이 미친 여자에게 돌을 던져 그녀는 맞고서  땅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여자를 위해 레서 박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시간 동안 만나고 박사는 다시 이 여자를 볼 수 없게 될 것인데 이야기 요법 같은 것도 언어나 문화의 장벽 때문에 가능하지 않고 해서 그는 영양 요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처방은 나이아신(비타민 B군 중의 하나)과 비타민 C와 비타민 B 복합제와 고단백 식사였다.

그리고는  미국에 있는 파이퍼 박사에게  그것을 보내 주도록  편지를 썼다. 선교사들도 생선 통조림을 기증해 주었다.
레서 박사가 5개월 정도 세계여행을 하고 미국에 도착했을 때 기쁜 편지가 날아 왔다. 파루메는 완전히 회복되어 가정과 마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달 후에 선교사의 두 번째 편지가 왔는데 파루메가 다시 병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선교사에게 자세한 조사를 해보도록 하였다. 파루메의 병이 일단 낫게 되자 파루메가 먹는 비타민이며 단백질을  그녀의 남편이 가로채서 먹고 있음이 밝혀졌다. 다시 그 식사로 돌아가자 그녀는 회복이 되었다.

식품에의 비타민의 강화

1941년 5월, 2차 대전의 검은 구름이 미국의 하늘을 덮고 있을  때 미국의 식품 영양의 전문가들은 워싱턴으로 모여들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방을 위한 전국 영양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문가들은 미 국민의 상당수가 영양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식품 가공 과정에서 이들 영양소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어떤 비타민과 그리고 미네랄에 대해서 충분한 섭취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1943년 1월 전쟁의 와중에서 미국의  전시 식약청은 드디어 미국 안에서 구워지는 모든 빵에 비타민 B군 중의 일부와 철분을 강화하라는 명령을 발표했다.
우리는  비타민이란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비타민 말이 나오면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그러하지 못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하얀 밀가루와 그것으로 만든 빵에 비타민 B나 미네랄을 첨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거나 혹은 자진해서 이들을 첨가하고 있다.

쌀을 많이 먹는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첨가가 없이는 백미나 백미로  만든 어떤 제품도 그 주 안에서 사용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비도 비싸지고 생산의 과정도 더 번거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나 주 당국이 생산된 쌀이나 밀을 잘 팔아먹게 도와주기나 할  일이지 자기들이 뭐라서 콩 넣어라 팥 넣어라 하고 야단이냐 하고 우리는 생각할지 모르나 선진의 나라들이 영양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우리와 달라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