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그는 과연 누구인가?

2005-08-30     제주타임스

지금 인천에서는, 자유공원에 설치된 ‘맥아더 동상’ 이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전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청동으로 동상을 세웠으나, 일부 시민단체들이 ‘동상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송도 지역에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이 있는 만큼 인천의 대표적인 공원에 냉전유물 설치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맥아더, 그는 과연 누구인가? 특히 제주도민들은 제주4·3과 연계하여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릴 필요를 느낀다.

맥아더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권한을 군정에게 넘기고, 이를 위반할 시 엄벌할 것, 영어를 공용어로 할 것 등의 포고령을 발표한 식민지 총독이다.
4·3항쟁 당시 민중들의 투쟁에 무력으로 대답한 미군정의 상관이 바로 맥아더이다.
맥아더가 지휘한 한국전 당시, 노근리를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미군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은 과연 얼마에 이를 것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할 따름이다.  
이처럼 맥아더는 남한에서, 군사통치를 자행하였으며, 그 참혹한 4·3도 발생하였다.
4·3에 대한 초기 진압은 미군정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맥아더는 분명히 38도선에 의한 국토 분단을 집행한 점령군 최고 책임자였다.

남쪽사람들은 미군들을 ‘해방군’이라고 불렀지만, 당시 미국 정부나 미군들 자신은 분명히 ‘점령군’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에서는 핵무기 사용까지 검토하며 중국까지 전선을 확대하려 했고, 휴전 협상과 관련하여 미국 대통령의 권한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트루먼에 의해 해임 당하기도 하였다.
맥아더는 전쟁을 확대하려 했던 ‘전쟁광’임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맥아더는, 1945년 2차 대전 끝나고 미국의 조선 분단 결정에 따라, 조선분단의 집행자이며,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 승인범위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북진을 감행한 자이며, 1950년 중국과 북한에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며 중국과의 전면전을 서슴치 않은 자이다.

미국에서는 전쟁영웅이라는 거품이 완전히 사라졌는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살아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니 맥아더에 점검이 절대 필요하다.
그리고 38선은 미국이 1945년 7월중에 계획을 세웠고, 8월 11일 러스크 중령이 미국무성 한 구석에서 지도로 확정지었다.
우리 한국사람 누구와도 상의 한마디 없이, 또 연합국 누구와도 상의 없이 독단으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을 바로 집행한 당사자가 맥아더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8월 15일 일반명령 1호를 선포해 38선에서 하루아침에 우리의 조국을 두 동강 내어버렸다.

지금 통일시대에, 이 분단집행 집달리를 찬양하는 동상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브리태니커 사전은 맥아더를 “…인격적인 면에서 불가사의했고 모순적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고압적이며 도도하며, 이기적이고 잘난체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맥아더는 분명히, 점령군 의도를 담은 포고령을 내렸으며, 한반도에 26개 핵폭탄 투하를 주장했으며, UN 허가 없이 38선을 넘은 불법행위자이며, 인천상륙작전 뒤 대량 민간인을 학살한 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직도 맥아더를 무속신으로 모신 무당도 한국에 존재하고 있다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지 답답할 뿐이다. 
제주에서도 4·3과 연계하여 맥아더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 관 후 (북제주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