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토석채취’ 오락가락하는 道政
제주도청 앞을 지나다 보면 본관 현판에 커다랗게 쓰여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란 문구가 눈에 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일들은 이런 구호가 ‘공허(空虛)한 의지’에 불과함을 짐작케 한다.
제주자치도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는 지난 24일 선흘곶자왈의 다려석산과 애월곶자왈 요석산업의 토석채취사업 건에 대해 조건부로 의결했다. 사업 부지가 지질학적으로는 곶자왈 경계지역에 포함됐으나 법과 제도적으로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조건을 붙인 내용도 제주고사리삼 등의 서식지 보호방안과 곶자왈 보전기금 마련 강구 등이 고작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론이 1년 전 행정 스스로 내린 결정을 새로운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 번복(飜覆)했다는 점이다. 환경영향평가 심의위는 지난해 같은 사안을 심의하며 ‘제주 곶자왈지대 실태조사 및 보전 관리방안 수립’ 용역 결과가 나온 이후 재차 심의키로 하고 사업을 보류시켰었다.
하지만 그 사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용역 결과에 따라 다시 심의하기로 했으면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런데도 슬그머니 ‘법과 제도’ 운운하며 결정을 번복해 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환경보전의 최일선에 서 있는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의 존재(存在) 이유 자체를 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라 불릴 정도로 제주지역 생태계를 이루는 축이자 보물창고다. 이런 곳에 산을 허물어 부수고 토석을 채취하는 사업을 허가하려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제주도정의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행태를 그대로 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관련 도내 시민사회 및 환경단체 등이 “개발 광기(狂氣)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주도정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공동 논평을 통해 “ 유네스코 3관왕을 부르짖고 환경보전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곶자왈을 파헤치는 골재채취사업을 노골적으로 허가해주려는 제주도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참담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심의위의 결정은 곶자왈 보전과 관련한 제주특별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며, 또한 도지사의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맹비난했다.
이러고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러고도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더 이상 말하려 하는가. 이 같은 물음에 이제 제주도정이 답(答)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