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트라우마 환자 치유 행정노력 미흡”

생존자 39.1% 심각한 스트레스 등 불구 대책은 심리지원사업뿐
직원도 3명 5·18 광주 13명과 대조…별도 센터 건립 등 대책 필요

2017-01-03     고상현 기자

# 제주 4‧3 사건 당시 경찰의 고문으로 아들이 죽었던 90대 할머니의 가슴에는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고, 목에는 아기 주먹만한 혹이 나 있었다. 평생을 울면서 가슴을 치고 목으로 피를 토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 4‧3 당시 군‧경에 의해 남편을 잃고 50년 동안 홀로 살아온 한 할머니는 “그때 일로 가슴이 미어져 숨을 쉴 수조차 없을 때가 많은데 의사는 아무런 병이 없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이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토론회’에서 실제로 4‧3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라며 소개한 사례다. 이처럼 상당수의 유가족이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한 국가폭력으로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제주도정 차원의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5년 제주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전체 생존희생자 174명 중 110명, 61세 이상 고령 유가족 1만2246명 중 1011명을 대상으로 직접 정신건강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생존자 39.1%와 유가족 11.1%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고 있다. 우울 증상 검사에서도 생존자 45.5%, 유가족 20.4%가 ‘중증도 우울’ 증상을 보였다. 현재 전체 희생자유가족이 5만9225명으로 집계되는 만큼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지만, 제주도에서 희생자유가족들을 위해 지원하는 사업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4‧3희생자유가족 심리지원 사업’뿐이다. 이마저도 담당 직원 3명(간호사 1명‧사회복지사 2명) 중 전문 상담 인력인 ‘정신보건전문요원’ 자격증을 취득한 인력은 없다. 현재 5‧18민주화운동 피해 가족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정신보건상담심리사를 비롯해 가정의학 전문의 등 총 13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4‧3 심리지원 사업이 ‘정신보건법’에 따라 주로 조현병, 도박 중독 등을 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제주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운영되다 보니 4‧3 피해자들이 가길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관계자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피해자들이 찾아오는 걸 부담스러워해 이용률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광주시에서 정신건강증진센터와 함께 별도의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장은 “4‧3사건이 5‧18보다 규모 면에서 훨씬 피해가 큰데도 피해자 심리 지원 사업은 광주보다 너무나 열악하다”며 “해마다 많은 유가족이 정신적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만큼 제주도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