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들고 거리 밝힌 아이들, 질문 있는 교육 지금부터”

<신년대담>이석문 제주도교육감에게 듣는다

2017-01-02     문정임 기자

10명 중 8.5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졸업장 과잉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력을 얻기 위한 출발점인 대입 전형은 예전보다 다양해졌다. 2018년부터 교육현장에 적용되는 2015개정교육과정에서는 정답이 아닌 과정을 평가한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고 고용 불안정이라는 사회 현상과 맞물려 평생 교육의 수요를 창출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많은 역할을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이 일상에 스며드는 시간도 임박했다.

이석문 교육감이 새해 3년차를 맞는다. 제주의 첫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그는 당선 이후 고입 연합고사 폐지, 고교체제개편, 질문이 있는 교실 확대 등 미래를 대비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왔다. 올해는 어떤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야기를 들었다.

▲2016년 지난 한 해를 정리한다면
=경쟁적인 고입 선발고사를 폐지함으로써 의무교육인 중학교 교육과정의 본질을 살릴 수 있게 됐다. 오랜 숙원인 교육비특별회계 도세 전출 비율을 3.6%에서 5%로 상향하는 것에 합의했다. 전국 최초로 학생 중독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2016년도 전국 시
·도교육청 종합 청렴도 1위, 전국 공공기관 유일 ‘5년 연속 청렴도 1등급도 달성했다.

큰 틀에서 한국 교육의 현안을 꼽는다면
=여전히 강고한 서열 중심의 대학입시 체제, 저 출산, 4차 산업혁명시대 대비 문제다. 현행 대입 체제는 아이들의 꿈과 끼, 가능성, 건강을 소진한다. 본연의 교육활동 실현에도 가장 큰 구조적 걸림돌이다. 저 출산은 국가적 문제다. 출산을 장려하는 동시에 적은 수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을 잘 키울 수 있는 교육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음을 확인했다. 지금 교육과정은 여전히 대량 생산·소비체제인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져 있다.

2019학년도부터 적용되는 고입 연합고사 폐지, 우려의 목소리는 남아있다
=일부 우려에 공감하지만 긍정적 흐름이 많다. 중학교 의무교육 본질 실현과 2015개정교육과정
·4차 산업혁명 시대 대비를 위해 연합고사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지역 간, 학교 간 균형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본다. 교육부도 전국 고입선발고사 폐지를 권고했다.

제1공약인 고교체제개편 추진 상황은
=2017학년도 평준화·비평준화고 지원 현황을 보면 읍면 지역 학교를 선택하는 비율이 2016학년도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특성화고 지원 현황에서도 꿈과 끼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는 흐름이 서서히 뚜렷해지고 있다. 내년 처음 운영되는 함덕고 음악과와 애월고 미술과에는 정원보다 많은 학생이 지원했다. 개편의 한 축인 성산고의 해사고 전환은 국회와 정부를 수시로 방문하며 치열하게 소통하고 있다. 

▲‘질문이 있는 교실’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인데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지난해 아이들은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현 시국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탄핵정국을 이끈 동력 중 핵심도 ‘아이들 질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이 있는 교실’은 정착단계다. 올해는 토론교육을 더욱 활성화하고, 책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활동을 운영하고, 유·초등에서는 날마다 1시간 교실 밖 수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과정 중심으로 학생평가방법을 개선하고, 다양한 참여, 협력, 표현으로 집단지성 경험을 확대할 계획이다. 학교 단위의 학습 공동체 구성을 확대하고, 교원 연구동아리도 활성화한다.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고입 선발고사 폐지, 수시 확대 등 도내·외에 불고 있는 교육적 흐름은 결국 과정중심의 평가를 통해 수업을 배움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부 기술 미흡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다.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해외 학교 및 국제학교 연수가 그래서 필요하다. 외부에서 봤을 때 나태하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과정 평가를 교사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미숙함으로 봐야한다. 2018년도부터 과정 평가 중심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실시된다. 교사들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수 이수 후 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교원 동아리 등을 구성해 지속적으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교원연수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원 양성에 강사로도 활동하게 된다. 연수에서 얻은 경험과 역량을 제주의 학교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활용하겠다.

과대학교가 된 일부 초등학교의 대책은
=해당 학교에 대해서는 교실 증·개축에 예산을 집중 투자해 수용 여건을 개선하겠다. 학생 수가 적어 고민하는 원도심 학교에는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거주환경을 개선하면서 교육적으로는 교육 본연의 활동이 잘 이뤄지는 좋은 학교로 만들어가겠다. 혁신학교 등을 통해 작은 학교의 교육을 더욱 좋게 만들어 읍·면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흐름을 만들고 제주시 서부권 중학교 신설도 검토하겠다.

교육감이 유아교육에 관심이 적다는 말이 있다. 단설유치원이 없는 제주에서, 병설유치원조차 만5세 이상만 받도록 했는데 유치원 진학 수요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현재로서는 아이들의 전체 성장 과정에서 보육과 교육의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도내 병설유치원은 만 5세 이상만 받도록 한 이유다. 만4세와 만5세는 한 살 차이라지만 교사 입장에서 교육하기에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보육(어린이집)과 교육(유치원)을 하나로 합치는 유보통합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보육과 교육을 통합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갖고 있다. 취학을 앞둔 시기의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2017년 역점 정책은
=‘질문이 있는 교실’ 실현을 통해 아이들의 자존감과 상상·창의력을 키우겠다. 아이들은 광장에서,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현 시국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며 답을 찾았다. 앞으로 광장과 거리가 교실로 대체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 문·예·체 동아리와 주제탐구 동아리를 활성화하겠다. 놀이 교육도 확대하겠다. 초등학교는 신나는 놀이시간을 운영하고, 간이 놀이시설 설치를 확대하겠다. 중등은 ‘쉼이 있는 일과시간’이 함께한다. 2교시 후 쉬는 시간 20분을 제공하는 방향이다. 초등학교 생존 수영교육을 정착시키는 등 안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아이들의 진로·진학 범위를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세계로 넓히고, 제주형 교육 복지 체계를 마련해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더불어 따뜻한 제주교육을 충실히 실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