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암 환자들이 갈 곳은 어디에?
암으로 이별하는 안타까운 사람들
중2 아들 홀로 둔 엄마
사실상 갈 곳 없는 70세 노모
아파보지 않은 사람 아픔 몰라
의지할 곳 없어 불안감·외로움
새해 암환자 위한 ‘지원’ 확충 소망
“추우면 더 아프고, 아프면 더 춥다.” 바쁘다고 시간 아끼느라 병원도 멀리하고, 건강검진조차 두려워하다 결국 중병에 걸리는 사례가 있다. 미련한 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건강은 자만하지 말라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작년 이 맘쯤 악성 유방암으로 제주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받던 중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놀랍게도 공기 좋은 제주에 그렇게 많은 암환자들이 있었을 줄이야. 어찌 보면 건강검진의 혜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된 사람들은 항암 없이 방사선 정도로 치료가 끝나기도 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되어 가망이 없는 환자도 종종 있다. 암환자의 눈에는 암환자만 보이게 되는지, 아프고 나서야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대학병원에 들어서면 ‘제주지역 암센터’라는 푸른빛 네온이 눈에 들어온다. 건강한 사람들은 상관없는 글자로 보이겠지만 나에겐, 핏기 없는 초췌한 암환자들의 낯빛을 연상시켜 가슴을 저미게 했다. 다행스럽게 완치율이 높은 유방암이라 마음을 놓았지만 암이란 것은 언제 어떻게 재발할지, 또 어떤 암이 올지 장담할 수가 없는 병이었다.
어느 날은, 항암주사실에서 환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안타까운 사연들을 듣게 되었다. 작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항암을 했지만 1년 만에 찍은 CT결과는 불행하게도 폐암말기 선고였단다. 그것도 중학교 2학년 아들을 홀로 둔 모자가정이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해서 학교나 직장에도 알렸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사회적 시선이었다고 한다. 아이 혼자 두고 떠나야 할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애통하겠는가? 슬퍼하는 그 엄마의 눈물에 주사실에서 항암제를 맞던 환자들이 소리 없이 흐느꼈다.
또 어떤 환자는 제주로 이주해 왔는데 4년 전 남편을 잃은 데다 있으나마나한 아들은 돈만 타가더니 엄마가 폐암3기 환자인줄도 모르고 연락도 끊은 채 산단다. 나이가 70이 넘은 환자인데다 집주인은 병에 걸린 것을 알고 집세를 배로 올려 신구간에 집을 비우라고 닦달을 한다고.
아픈 것도 서글픈데 추운 겨울, 병들고 가난한 사람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제주의 인심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나와졌는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내달 25일부터 2월 초까지 ‘신구간’은 제주만의 토속신앙이 깃든 이사풍습이다. 도로마다 이사철 차량들이 줄을 지어 달린다.
신공항 발표 후, 성산읍에서 표선면 일대는 하루가 다르게 건축물이 세워지고 건축업자들이 이주해오면서 임대주택이 부족해지고 있다. 그로인해 집세는 점점 올라가고 임대인들의 마음도 풍선처럼 부풀어졌다.
겨울에 땅이 얼지 않는 제주의 자연적 조건에 건축이 성행하면서 기술자 및 인력들이 몰려온다. 이사철, 새 집으로 입주하는 사람들은 설레는 기간이지만 아직까지 집을 구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턱 없이 비싼 집세를 요구하는 바람에 쫓기듯 나와야 되는 사람들, 갈 데 없는 중증 암환자들은 계란이나 귤 까는 부업으로 연명을 하고 항암제로 생명연장을 한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모른다. 불행은 정해져서 오는 게 아니다. 따뜻한 사회적 배려가 그리운, 의지할 곳 없는 암환자들의 불안감과 외로움은 병마보다 무서운 현실이다.
연말이 되면서 ARS 불우이웃돕기 후원단체에서 후원해달라는 전화가 종종 온다.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고 천사의 목소리로 후원 요청을 한다. 극한 상황의 환자들에게도 말이다.
먼 나라 아프리카에도 후원금을 보내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암 환자들에게 그런 전화는 정말 염장을 지르는 일이다. 전화기에 대고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모르는 상대방에게 무턱대고 그런 전화를 해대는 후원단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불우한 이웃은 먼 곳이 아닌, 바로 내 곁에 있다. 새해는 취약한 암환자들의 생계를 이어줄 수 있는 일자리 제공과 완치판정 5년간 무료요양시설이 확충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