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틀 자체를 바꿔야”

국정교과서 의견수렴 道교육청-역사교사 워크숍
“폐기는 당연…현대사 강화·교과서 개방화 필요”

2016-12-22     문정임 기자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의견 수렴 마감을 하루 앞두고 22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마련한 긴급 토론회에서 제주지역 역사 교사들은 국정교과서 폐기에 한 목소리를 냈다.

한 발 더 나아가 학기말 제대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현대사 순서를 앞으로 당겨 아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역사를 중심으로 더 흥미로운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현장의 의견도 제시됐다.

송승호 제주여자중학교 역사교사는 우선 역사 교육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국정교과서 발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송승호 교사는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올바른 전망과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학문이기 때문에 한 가지 사관만 담아낼 수 없다”며 “특히 이번 국정교과서는 비전문가들이 정부의 목적에 맞는 사실들만 나열해놓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발행 의도의 불순함을 지적했다.

송 교사는 국정교과서 폐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과서 맨 뒤에 놓인 현대사를 앞으로는 더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송 교사는 “역사란 나와 가장 가까운 문제에서부터 관심이 시작되는 법인데 우리는 먼 옛날 순으로 배우면서 아이들이 흥미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나치게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민족사관의 문제를 지적하며 “보다 공정하고 세계적인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교과서가 더 개방화돼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그러면서 송 교사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먼저 촛불현장으로 나갔을 때 교사로서 한없이 부끄러웠다”며 “거리를 나가보면 현대사에 대해 많은 지식을 요구하는데, 지금 우리 교육은 사실 위주, 그것도 매우 보수적인 사실 위주의 배움에 멈춰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영주고등학교 이영권 역사교사도 국정교과서 자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교사는 “‘양심적인 도둑’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국정’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도 그렇다”며 “국정교과서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막음으로써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는 소극적 태도를 가르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번에 보았듯 국정교과서에는 4·3사건의 배경과 원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해방정국 서술은 오로지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선’으로 설정하는 등 정부의 시각에 따라 교활하게 서술했다”고 평가하고, “국정교과서는 폐기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교과서를 폐기해도 교육현장에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교사는 “이미 검정 교과서들이 많이 있고, 입시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조성윤 제주대 교수도 역사를 가르치는 문제에서 국정교과서는 적합한 체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성윤 교수는 ‘역사,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발제에서 “제주4·3이 유신시절 국정교과서에는 폭동사건으로 사실과 다르게 기재됐지만 그 시절 교사들은 별 고민 없이 이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서 대학시험을 준비했다”며 “국정교과서는 자신을 군주로 알던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보여줬던 독재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으로 정권의 시각과 욕구를 실현하는 도구일 뿐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학의 속성에는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교육청 대회의실 현장에서는 제주역사교사모임 등 일부 교사들이 도교육청이 뒤늦게 현장 의견 수렴에 나선 데 대해 정치적인 행보라며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