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의 의미와 정신

2016-12-21     김희현

제주 역시 다양한 인권문제 직면
인권 거버넌스로 모범사례 가능

1948년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이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날이다. 매년 유엔은 이날을 ‘세계인권의 날’로 지정, 세계인권선언의 의미와 그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 자행된 인류의 야만적인 범죄에 대한 성찰을 계기로 상실된 인간 존엄과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국가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된 기준’을 담았다. 이제 세계인권선언은 비록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각종 인권조약과 각국 헌법에 그 내용이 각인되고 반영된 실효성이 큰 국제인권규범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인권의 날을 며칠 앞둔 지난 5일 서울에서는 ‘2016 서울인권컨퍼런스’가 1박2일 일정으로 개최됐다. 필자를 비롯한 제주인권위원회 구성원들도 참여한 가운데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인권도시를 실현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인권보장 제도 구축’, ‘인권정책 이행 및 평가’, ‘인식 제고’, ‘차별과 혐오’, ‘지속가능 발전목표와 인권’ 등의 주제 세션으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인권 실현을 위한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됐다.

필자 또한 초대 받고, ‘제주의 인권제도화 과정에서의 의회의 역할과 과제’를 발제했다. 향후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 만들기를 위한 법·제도·정책은 물론 앞선 지방정부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 주민 참여를 높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나누는 자리였다.

제주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권의 첨예한 현장이다. 과거 민란의 시대와 해방 이후 좌우이념 대립과 갈등으로 비롯된 4·3을 거쳐, 강정해군기지와 제2공항 건설 등 국가폭력과 개발·성장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비인권적 상황에 노출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삶이 유린당했던 고통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이후 급격한 인구 및 관광객 증가에 따른 개발과 투기로 오폐수·주택·쓰레기·교육 문제 등 제주의 자연과 공동체 파괴가 가속화, 선주민과 이주민간의 갈등과 대립, 양극화에 따른 사회 불평등 현상이 야기되고 있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도민 살인사건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문제 등 제주 또한 세계의 다른 도시들이 직면하고 있는 인권 문제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권의 가치와 이념을 모든 행정의 중심에 두는 ‘인권의 주류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권조례 제정, 인권위원회 구성, 인권기본계획 수립, 인권전담부서 설치 등 인권제도화, 인권교육 및 홍보 등을 통한 인권문화 확산으로 궁극적으로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월 제주도 인권정책의 기본방향과 실천 방안을 담은 제1차(2017∼2019) ‘제주특별자치도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사업을 발주, 내년 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비록 제주도가 지금은 서울·광주·충남 등 다른 지방정부의 뒤를 따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이 시민사회단체와 행정부·의회의 인권거버넌스를 통한 협치와 협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앞선 국내외의 인권도시 못지않은 모범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향후 ‘서울-충남-광주-제주’를 잇는 인권도시 벨트 구축을 위해 더욱더 소통과 협력을 해나가도록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권도시 구축의 주요 행위자로서 도의회도 시민사회단체, 행정부와 함께 애쓰고 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이라는 대통령의 책무를 저버린 현직 대통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소추한 상황에서 “국민의 의사는 통치권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는 세계인권선언의 의미와 정신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