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아니고”

2016-12-21     김철웅

우병우 전 수석 ‘도발적 언사’ 회자
대검 과장 당시 던진 첫 마디
원칙에 충실한 검사로 읽힐 수도

2016년 그의 행태는 원칙과 달라
최순실게이트 청문회 ‘잠적’
권력만 누릴 뿐 무책임한 부류들

“노무현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도 아닌, 그저 뇌물수수 혐의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2009년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이던 우병우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하며 던진 첫마디라고 한다.

너무나 기세등등하고 보기에 따라선 오만방자한 발언이다. 반면 ‘원칙에 충실한’ 검사의 모습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렇다.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져야하는 게 맞다.

그런 그가 ‘법꾸라지(法+미꾸라지)’ 소리를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신분으로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잠적해 버렸다. 그에겐 2000만원에 가까운 ‘현상금’까지 걸렸다. 김성태 국정조사특위 위원장 등이 사비를 들이며 ‘공개수배’에 나선 것이다.

더욱이 기가 찬 것은 우 전 수석의 꼼수다. 청문회 불출석도 문제인데, 증인 소환장과 국회의 동행명령 자체를 수령하지 않고 있다. 동행명령을 거부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이지만 반드시 대면으로 직접 전달해야 하는 ‘맹점’ 때문에 잠적 상태인 그는 사실상 법적 처벌을 ‘합법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우 전 수석은 의도적 잠적이란 비난 여론에 “민정수석은 공개석상에서 업무 관련 발언을 않은 원칙을 지키느라 청문회에 나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곧이들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그는 청문회 핵심 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권력의 최근 거리에 오랫동안 있어온 만큼 그에게 던져지는 물음표가 많다. 무엇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직무유기 의혹일 것이다. 2014년 민정비서관 당시 해경상황실 전산서버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는 검찰 전화지시 등 ‘세월호 7시간’ 수사에 외압 정황 등도 드러나고 있다.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오죽했으면 계속 터지는 의혹에 ‘양파 수석’이란 소리까지 들었을까. 처가 부동사 거래 개입·몰래 변론·농지법 위반·공직자 재산 허위신고·병역 아들 꽃보직·본인 병역특혜·부동산 차명 보유 및 탈세·처가-넥슨간 1300억원대 부동산 부당 거래·인사 부실검증 의혹 등이다.

그런 그가 오늘(22일) 마지막 5차 청문회에 나온다고 한다. 청문회 핵심 증인인데다가 버티다 나왔고 의혹도 많으니 당연히 ‘우병우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작 청문회에 나왔어야 했다. 자신이 떳떳하다면 못 나올 이유가 없었다. 이왕 나올 거면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 좋은 기회다. 억울하다고 항변했던 숱한 의혹들을 공개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책임을 지자. 모든 과오가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지만은 않는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방법이 잘못되면 결과에 상관없이 책임을 지기도 한다.

어느 것이든 결과가 있다면 평가 받아야 한다. 그게 권력을 잡고 휘두른 사람들의 책임이자 권리다. 잘 한 일에는 상(賞)이 당연하듯 잘못에 대한 벌(罰)도 있어야만 한다.

초등학생들도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벌을 받는다. 교도소 재소자들도 비슷하다. 이들 상당수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자신들이 저지른 죄(罪)를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인정하고 벌을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추상같이 죄를 추궁하고 책임을 강요했던 ‘왕(王) 검사님’ 출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난 2차 청문회에서 ‘비겁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최순실도 모른다”고 거짓말했다가 동영상 증거자료가 공개되자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늘날의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슬픔은 2배다. 이렇게 개판으로 유린된 국정의 현실이 가장 슬프다. 그리고 개판인 현 상황에 책임이 있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권력자’들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행태에서 비롯되는 심한 배신감이다. 책임 의식이 누렸던 권력만큼은 고사하고 초등학생만도 못해 없어 보인다.

오늘 마지막 청문회다. ‘공개수배’ 끝에 출석한다는 우 전 수석에게 전한다. “우병우씨 당신은 더 이상 전 민정수석비서관도, 법조인도 아닌, 그저 국정농단 의혹 대상자로서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