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에 대한 엉뚱한 생각
우리는 과거라는 실낱들로 단단하게 짜여진 직물로 된 옷을 입고 있다. 올이 풀어지면 매듭을 다시 짓기도 하고 구멍이 나면 신소재의 실로 더 단단하게 기우며 여전히 과거의 옷을 입고 있다. 이렇듯 과거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들은 긴 시간의 지속성 속에 여전히 살아있으면서 우리를 감싼다.
그러나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고 새로운 입장에 서려는 사람들도 많다. 과거에서 파생된 모방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들 우리는 과거의 유용했던 여러 가지 사상이나 제도에 의해 현재에 서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동안 발전해온 기술은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했고 아울러 논리적인 사고의 습득은 인간을 어떤 틀 속에 가둬 놓기도 하였다. 알 수 없는 것들은 지식에 범주에서 이탈되기도 하고 또한 신비주의적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상인지라 요즘 틀에서 벗어난 엉뚱한 얘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가 십상이다.
신화의 세계가 사라지고 따라서 기적도 사라져 믿음이 메말라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때론 옛날이야기에 눈이 초롱초롱 빛나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걸친 옷의 매듭을 따라 손길의 감촉을 느끼다 보면 그 어디엔가 과거의 생명력이 살아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된다.
이렇듯 과거 약 2500년 전의 여러 가지 제도와 사상들이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중 고대 철학의 한 부류인 피타고라스학파를 예로 들어보자. 피타고라스학파들은 도형으로서 수를 표시하는 방안을 강구하였으며 점을 모음으로써 도형을 만들었다.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을 합한 것과 같다는 그들의 정리는 지금도 우리 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그들은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로서 수를 적용하며 음악, 의학, 천문학의 분야에 있어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건강이라는 것도 육체의 어떤 요소들 사이에 올바른 수적 비율을 확보함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이런 피타고라스의 주장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증거 제시가 분명치 않다며 비난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리송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주장에서 신비로운 환희를 느끼곤 한다. 그러한 신비감은 딱딱한 도형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선다.
도형 중에서 사각형과 원형보다 나는 특히 삼각형을 좋아한다. 도형을 사람의 성격에 유추시켜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을 하게 된다. 사각도형과 같은 사람은 대체로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도 강한 편이다. 한 번 화나면 입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좀처럼 움직임이 없다. 화가 나면 날수록 점점 더 대화하기를 꺼린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범은 두 가지이다. 커다란 충격을 주어 한 면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랑의 힘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 상대방을 대하면 움직이게 되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원형인 사람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무슨 일을 의논해도 잘 받아준다. 하지만 너무 쉽게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안정감이 없다. 그러한 사람과는 의견 충돌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진지한 감이 덜 들어 신뢰에 문제가 된다. 직접 밀지 않았는데 옆에서 충격만 주어도 쉽게 구르다 장애물을 만나면 그때서야 정지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대부분 원형의 성격을 좋아한다.
삼각도형의 경우는 다르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일 줄 알고 정지할 때는 안정감 있게 스스로 설 줄 아는 도형이다. 의견을 굳혔다가도 의견의 조화를 원하며 모서리 끝을 살짝 건드리면 한 면을 구르고 다시 안정감 있게 원래의 모습으로 선다. 사각 도형처럼 힘들게 밀지 않아도 된다. 마구 구르지도 그리고 버티지도 않는 삼각도형을 좋아하다 보니 삼각도형과 같은 산을 좋아한다. 자신을 밟고 자연스럽게 오르게도 할 수 있고 내려오게도 할 수 있다. 오르면서 뱉어내는 인간의 온갖 더러움과 시름을 모두 받아들이고 나서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초록의 여유를 가슴 가득 채워주는 산의 너그러움이 참으로 삼각형을 닮았다.
살면서 옷감의 보푸라기가 허름하게 돋아나올 때마다 옷 손질을 하듯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해보는 것도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강 연 옥<시인>